제약업계에 최후의 진술 기회 줘라
제약업계에 최후의 진술 기회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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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9.0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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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값인하를 골자로 하는 약가제도 개편안을 놓고 보건당국과 제약업계가 팽팽히 맞서 정면 대치하는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답답하다. 어찌하다 국민들이 정부와 제약업계의 일처리 미숙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나 하는 생각에서 착잡하기 짝이 없다.

정부가 제약산업 선진화를 추진한다며 8.12 약가인하 정책을 발표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정책목표는 온데 간 데 없고 서로 밀리면 죽는다는 생각에서인지 사생결단의 자세로 맞서고 있다. 정책논쟁을 벌여야할 사안이 양측이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기 싸움의 장으로 변질돼 버렸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제약산업이야말로 차세대 국가경제를 선도할 신성장동력이라며 글로벌 수준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제약업계는 연구개발투자 확대계획으로 화답했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와 이에 따른 의료비 및 보건복지비용 증가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제약산업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사실 제약-바이오를 포함한 BT(생명공학기술)는 선진국들이 집중 투자하는 분야로 우리도 결코 놓칠 수 없는 미래 유망산업이라는 점에서 방향설정은 백번 옳았다.

그러던 양측이 어느 사이 한 목표를 향해 가는 동반자가 아니라 반드시 내 뜻을 관철시키고야 말겠다는 대결의식에 빠져 허우적대니 실망스럽다. 방법론에서 엇갈린 꼴이니 어이없는 일이다. 행정도 어떤 의미에서는 비즈니스의 한 형태라고 볼 때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얘기가 들어맞는가 보다.

정부와 제약업계간의 이번 갈등은 복지부가 약값을 대폭 내리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비롯됐다. 보건당국의 약가제도 개편 방안이 계획대로 내년부터 시행되면 제약업계는 당국도 인정한 바와 같이 연간 2조1000억원의 매출감소가 불가피하다.

단기간 내에 이러한 정도로 매출이 줄어든다면 전체 산업규모가 연간 13조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약산업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충격적인 정책을 추진하려면 미리 산업의 특성과 환경을 감안해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시장에서 활동하는 산업계의 의견을 듣고 토론을 벌이는 게 순리일 것이다.

법령을 제정-개정할 때 입고예고기간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해야 무리없이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보건당국은 국내 제약산업계의 존폐가 걸린 사안을 입안하면서도 업계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주무부서와 몇몇 인사들이 모여 밀실에서 만들어 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안일한 관료주의의 발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의약품은 약효와 안정성 보장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생산, 판매 과정에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어느 정도 정부의 규제가 용인돼왔다.

그러나 갈수록 제약산업은 기술집약도가 높아지면서 정부의 규제범위가 축소되는 추세임을 알아야 한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제약산업의 변화추이를 깨닫지 못한 우리 보건당국이 옛 추억을 그리워하며 제약산업계에 군림하려다 빚은 부작용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제약업계는 신약강국을 향한 출발선에서 성장동력을 상실할 위기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안타깝지만 쓸쓸한 ‘거리의 악사’로 전락하기 직전이다.

낭만주의 시인 빌헬름 뮐러의 시 ‘거리의 악사’가 슈베르트를 만나 명곡으로 재탄생한 것과는 정반대다. 거리의 악사는 마을 변두리에서 손풍금을 정성스레 연주하지만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개들만 ‘컹컹’ 짖어댈 뿐이니 딱히 오늘의 제약업계와 흡사한 신세다.

안톤 슈낙을 빌어 표현하면 ‘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가는 한 마리 사슴의 눈초리’를 닮은 제약업계의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가을이다.

진수희 복지부 장관은 마케팅 인프라 구축, 개별 제약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획득, 금융지원 분야에서 정부와 제약업계의 공조체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는 립 서비스에 그쳤을 뿐이다.

약가인하 조치를 앞두고 제약업계에서는 벌써 당장의 성과를 내기 어려운 연구개발 파트부터 위축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구조조정의 먹구름이 몰려온다는 기상예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약가인하조치가 시행되기까지는 시간이 있는 만큼 보건당국은 인하근거를 놓고 이해당사자들과 충분히 검토해 문제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약가인하에 따른 고통의 형평성과 적정성을 따져보고 R&D투자를 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바란다. 살인범에게도 판결하기 전에 최후의 진술 기회는 주는 법이다.

하물며~.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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