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인하와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약값 인하와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 노영조 논설주간
  • 승인 2011.08.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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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값 인하 및 제약산업 선진화’란 깃발을 높이 치켜든 진수희 복지부 장관이 요새 보여준 드높은 기상(?)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상반기까지만 해도 대다수 국민이 찬성하는 가정상비약의 약국외 판매 문제를 놓고도 오락가락하면서 미적거리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기 때문이다.

약사회의 검찰고발, ‘일반약의 약국외 판매 반대 100만명 서명운동’과 제약산업 역사상 처음인 제약사 CEO들의 길거리 투쟁이라는 격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약사법 개정과 약값 인하를 밀고나가는 모양새가 다른 사람인 것만 같다. 어찌보면 상대의 협공을 일월쌍도로 맞받아치면서 적진을 종횡무진하는 수호지의 여장부 일장청 호삼랑을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신의 지역구 약사회 모임에 나가 “여러분이 우려하지 않도록 하겠다”, “약사의 동의가 없으면 약국 외 판매가 어렵다”며 이 문제에 반대하는 약사들의 기세에 눌려 몸을 낮췄던 진 장관이기에 그의 돌연한 변신은 많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국무위원의 입장보다 지역구 유권자 표를 더 의식했던 진 장관이 이제 제자리를 찾은 것일까.

감기약 등 일부 일반약을 약국 이외의 장소에 팔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약사법 개정은 국민의 불편해소라는 측면에서 늦은 감마저 있다. 그가 계속 약사회 주장을 두둔하거나 끌려 다녔다면 장관으로서 직무유기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다. 이제 그런 시비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그러나 제약산업 선진화란 명분하에 추진하는 약가제도 개편은 여러 측면에서 살펴봐야 하는 사안이다. 정책 결정에 앞서 의약주권과 신약개발 전략, 다국적 제약사들의 행태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했다.

그런 정책적 고민이 생략된 채 우선 먹기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약값인하라는 보따리를 풀어놓은 것만 같아 잘했다는 평가를 하기가 어렵다. 미국 쌀값이 국내 쌀값의 4분의 1 정도라고 해서 국내 쌀값을 그 수준으로 내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제약산업은 전통적으로 규제받는 산업으로 간주돼 왔다. 약물의 안전성과 효과를 확보하기 위해 상당한 정도의 정부규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공공보험인 건강보험에서 약제비가 지출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해서 건강보험재정적자를 막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약값조정권을 조자룡 헌칼 쓰듯 휘두르는 것은 매우 서투른 행정이요,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 뻔하다. ‘초보행정‘이란 딱지를 붙여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세계에서 유례없는 속도로 급격히 진행되고 만성질환이 늘고 있는데다 새로운 약에 대한 수요 또한 급증하는 추세다. 자연히 약제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적정 약값을 산정하는 것과 동시에 의료비 지출증대에 대처하기 위한 수입확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정책당국자의 임무다. 건강보험료율도 검토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단계를 모두 건너뛴 채 약값 내리는 것으로 건보수지악화를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다 취했다고 손을 터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약값이 터무니없이 비싸 제약사들이 폭리를 취한다면 당연히 적정가로 내려야 한다.

그러나 건보수지를 맞추기 위해 약값을 조정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에 사람의 몸을 맞추는 악행과 마찬가지다. 한 노상강도가 행인을 붙잡아 자기의 철침대에 누이고 그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잘라내고 침대보다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여서 죽였다는 역설이 재현된다면 참으로 우울한 일이다.

‘숨겨놓은 리베이트 재원’이라는 판매관리비도 정확한 비교분석이 필요하다. 제약산업은 특성상 유통업무를 겸하고 있다. 제약산업의 판관비 비중을 단순히 제품을 만들기만 하는 일반 제조업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한국은행의 2010년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의 판관비율은 평균 35.6%로 화이자, 노바티스, 머크 등 글로벌 제약사 본사의 32.7%와 비슷한 수준이다. 유통망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비용이 드는 것은 국내사나 글로벌제약사나 마찬가지다.

현재 제약산업에 긴요한 일은 신약개발에 정부가 선도적으로 투자하고 경쟁을 촉진시킬 수 있는 정책을 펴는 일이다. 국내 IT산업이 오늘과 같이 세계 선두에 서기까지 정보과학 부처가  80년대부터 집중투자한 일을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정부가 투자를 하지 않은 채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일은 시장을 왜곡시킬 따름이다. 권한을 쥔 부처가 스스로 자제하기는 힘든 법이지만 복지부가 이런 선진행정부처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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