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재협상을 계기로 의약품 분야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목받고 있는 '허가-특허 연계' 조항이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한미 양국이 '이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오늘(30일)부터 내달 1일까지 미국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 컬럼비아시에서 한미FTA 관련 협의를 위한 통상장관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대표로 한 한국협상팀도 어제(29일) 미국으로 출발했다.
당초 이번 회담은 FTA교섭대표가 참석하는 실무협의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통상장관회담으로 격상되면서 한미FTA와 관련된 주요 현안들이 최종 타결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한미FTA 재협상으로 의약품 분야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허가-특허 연계' 조항의 삭제 가능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 허가-특허 연계 수용 굴욕적 협상결과 … 국민 약값 부담 증가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란 그동안 독립적으로 운영됐던 의약품 특허제도와 허가제도를 연계한 것이다.
예컨대 특허권이 존속하는 기간(출원일로부터 20년)에 특정기업이 제네릭(복제약) 허가를 신청하는 경우 식약청이 특허권자에게 이를 통보해 재산권 침해 여부를 물은 뒤 문제가 없을 경우 허가를 해 주는 것이다.
만약 이 조항이 재협상에서 삭제되지 않으면, 그동안 특허만료기간에 즈음에 신속히 제네릭을 개발했던 제약업계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오랜기간 특허를 연장하기 위해 다국적 제약사들이 에버그린 전략을 펼치는 상황에서 허가-특허 연계제도까지 도입될 경우, 한국은 제약업계 피해뿐 아니라, 국민들의 약값 부담도 크게 늘게 된다. 오리지널 고가약 사용 기간이 늘어나면서 건강보험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한미FTA 타결 당시 시민단체와 야당을 중심으로 미국의 신통상정책에서조차 삭제한 이 조항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정부는 굴욕적인 협상을 통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의약품 등 제약산업에 큰 타격을 예고했다.
◆ 조항 한 줄에 국내 제약산업 '비틀 비틀'
당시 정부는 허가-특허 연계조항으로 후발 의약품의 시장진입이 9개월 가량 지연되고, 특허분쟁 증가율이 40%라고 가정할 때 향후 10년간 ▲생산 매출감소 673억원~1458억원 ▲소득 감소 307억원~631억원 ▲고용감소 275~595명 ▲소비자 후생 손실 517억원~1754억원 등 1497억원~3843억원의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후발 의약품의 시장진입이 예상보다 더 오랜 기간 지연되거나 특허분쟁이 늘어나면 피해액은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일각에서는 미국 특허분쟁 비율이 72%에 달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특허분쟁 40%로 추산한 정부의 피해액은 과소평가됐으며, 정부가 추산한 것보다 최소 5배에서 최고 10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재협상에서 의약품 분야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허가-특허 연계 조항을 반드시 뜯어고쳐야 하는 이유다.
◆ “재협상만이라도 제대로 해야”
그러나 이러한 기대가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미국이 지난 2007년 7월 이미 타결된 협상을 자국 자동차 산업의 경영난 등을 이유로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우리측도 불리한 조항을 수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만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그동안의 협상 자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저가구매인센티브제, 리베이트 쌍벌죄 등으로 국내 제약업계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한미FTA만이라도 제대로 된 협상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이번에도 퍼주기 협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며 "파나마와 콜롬비아는 미국과 FTA 재협상을 통해 이 조항을 삭제한 바 있지만, 우리 대표팀은 그런 배짱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헬스코리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