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세계 최초의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 치료 단일정 복합제인 '스트리빌드'가 국내 시장에서 임무를 다 하고 유유히 퇴장했다. '스트리빌드'의 바통은 '젠보야'와 '빅타비'가 이어받았다.
길리어드사이언스는 최근 '스트리빌드'의 시판허가를 자진 취하했다. 허가를 획득(2013년 2월)한 지 7년 8개월여 만에 국내 시장에서 '스트리빌드'를 철수시킨 것이다.
'스트리빌드'는 HIV 감염 치료제 시장에서 복합제의 문을 연 제품이다. '엘비테그라비르' 150mg, '코비시스타트' 150mg, '엠트리시타빈' 200mg, '테노포비르디소프록실푸마레이트'(TDF) 300mg를 한 알로 합친 세계 최초의 복합제다.
과거 HIV 치료를 위해서는 고강도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 요법(HAART)에 따라 여러 약을 복용해야 했지만, '스트리빌드' 등장 이후로는 하루 한 알 복용 요법이 대세를 이루게 됐다.
출시 첫해인 2014년 22억원이었던 '스트리빌드'의 매출은 이듬해인 2015년 116억원으로 무려 432% 성장했고, 2017년에는 200억원의 매출을 기록, 전년보다 72% 성장하며 관련 시장 1위 제품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스트리빌드'의 매출은 2017년 127억원, 2018년 13억원으로 곤두박질했다. 지난해에는 매출액이 1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리빌드'의 매출이 이처럼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길리어드사이언스가 '스트리빌드'를 후속 제품인 '젠보야'와 '빅타비'로 빠르게 스위칭했기 때문이다.
'젠보야'는 기존 '스트리빌스' 성분 중 '테노포비르푸마르산염'(300mg)을 '테노포비르알라페나미드'(10mg)로 바꾼 새로운 4제 복합 HIV 감염 치료제다. '스트리빌드' 보다 안전성이 한층 개선된 약물로 평가된다.
'젠보야'의 주성분 중 하나인 테노포비르알라페나미드(TAF)는 림프구 내로 흡수된 뒤 테노포비르 성분으로 활성화돼 HIV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과를 발휘한다. 혈중 위장관에서 분해되지 않고 림프구까지 도달한 뒤 테노포비르로 전환되므로, 기존 TDF 제제의 10분의 1의 용량으로도 비열등한 항바이러스 효과를 보인다. TDF와 비교해 용량이 크게 작은 만큼 부작용 위험이 낮은 것이 장점이다.
길리어드사이언스는 지난 2016년 국내에서 '젠보야'의 허가를 받아 이듬해인 2017년 출시하고, '스트리빌드'가 차지했던 시장을 '젠보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젠보야'의 매출은 출시 첫해인 2017년 이미 137억원을 달성했고, 2018년에는 332억원을 기록하며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이후 길리어드는 2019년 7월 '젠보야'의 후속 제품인 '빅타비'를 출시하고, 다시 한번 스위칭 작업에 돌입했다.
'빅타비'는 '빅테그라비르', '엠트리시타빈', '테노포비르알라페나마이드' 등 세 가지 성분이 하나의 정제로 이뤄진 단일정 복합 HIV 감염 치료제다. 출시 1년(2019년 7월~2020년 6월)만에 194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스트리빌드'는 길리어드사이언스가 국내 HIV 감염 치료제 시장에서 자리매김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제품"이라며 "관련 시장 1위 바통을 '젠보야'와 '빅타비'에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임무를 모두 마치고 퇴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업계, HIV 치료제 대신 B형 간염치료제 시장 선택
'스트리빌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약품 특허목록에 등재된 특허가 10개에 달한다. 그만큼 길리어드 측이 시장 방어에 공을 들였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국내 제약사들은 '스트리빌드' 제네릭 개발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스트리빌드'의 특허 중 국내 제약사들의 표적이 된 것이 있다. '뉴클레오티드 유사 조성물 및 합성 방법' 특허와 '뉴클레오타이드 동족체' 특허다.
이들 2개 특허는 '스트리빌드'의 주성분 중 하나인 '테노포비르디소프록실푸마레이트'와 관련된 것으로,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슈퍼 블록버스터 B형 간염치료제인 '비리어드'(테노포비르디소프록실푸마레이트)에도 동시에 적용된다.
국내 제약사들은 시장 규모가 1500억원에 달하는 '비리어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해당 특허에 도전장을 던졌고, 무효화 및 회피에 성공해 제네릭 수십여개를 출시했다.
이러한 현상은 '스트리빌드'의 후속 제품인 '젠보야'에서도 나타났다.
10곳이 넘는 국내 제약사가 '젠보야' 특허 중 '테노포비르알라페나미드' 성분과 관련된 특허에 대해서만 소극적권리범위확인 심판을 청구해 현재 법정 공방을 진행 중이다. '젠보야'의 주성분 중 하나인 '테노포비르알라페나미드'는 '비리어드'의 후속 약물인 '베믈리디'의 주성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