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사람 등 포유동물에도 물고기 등 냉혈동물처럼 자체적으로 뉴런을 치료하고 복구하는 유전학적 경로가 똑같이 존재하지만,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어떤 이유로 그 경로가 비활성화돼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고기의 뉴런 재생 사실은 밝혀졌지만, 그 경로가 포유류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세계 처음이다.
따라서 이 경로를 다시 활성화할 방법을 찾는다면 뉴런 사멸로 생기는 뇌손상이나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 등 치명적 질환에 대한 획기적인 치료법을 기대할 수 있는 연구 결과여서 관심이 모아진다.
신경세포(뉴런)의 사멸은 실명(失明)에서부터 뇌손상이나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 등 치명적 질환을 불러온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사멸한 뉴런을 대체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기에 단순히 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미국 노틀담대, 존스홉킨스대, 오하이오주립대, 플로리다대 공동 연구팀은 제브라피쉬, 닭, 쥐에게 망막 부상을 입힌 뒤 각 종(種) 별로 뮐러글리아(Müller glia)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관찰했다.
연구팀은 앞선 연구를 통해 물고기의 일종인 제브라피시(zebrafish)가 망막을 다친 후에도 스스로 뉴런을 재생해 시력을 회복한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뮐러글리아(Müller glia)라는 세포가 주도적인 작용을 한다는 사실과 이 세포가 포유류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 연구는 제브라피시에서의 ‘뮐러글리아’의 작용이 포유류에서도 일어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실시됐다.
관찰 결과 세 동물에서 뮐러글리아 세포의 활동 기전은 동일했다. 망막에 부상이 생기자, 이 세포는 활성 상태에 들어갔고, 그중 일부는 염증을 조절하는 역할을 시작했다.
세스 블랙쇼(Seth Blackshaw) 존스홉킨스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학과 교수는 “(뮐러글리아 세포는) 세 동물 모두에서 부상을 억제하고 면역 체계 세포에 신호를 보내 박테리아와 같은 외부 침입자와 싸우거나 부서진 조직을 청소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에서 제브라피시와 같은 망막 재생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 결과 제브라피쉬는 망막이 손상되었을 때 뮐러글리아 세포가 어떤 유전자가 켜지고 어떤 유전자가 꺼져야 하는지를 제어하는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연구팀은 이를 ‘재프로그래밍’ 과정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과정을 하는 동안 뮐러글리아 세포는 유전자 발현 시스템을 유전자 세포, 즉 유기체의 초기 발달에 사용되는 세포와 같이 변화시켰고 이는 망막뉴런의 재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닭이나 쥐에서는 뮐러글리아세포가 재프로그래밍과정에 돌입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이에 대해 “실험에 이용한 세 동물 중, 사람과 가장 비슷한 쥐의 경우 제브라피시와 달리 뉴런 등 새로운 세포가 생성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NF1 유전자가 다시 활성화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 작용 때문에 인간 등 포유류에서 망막재생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랙쇼 교수는 이 차이에 대해 “뇌와 다른 신경조직에서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은 동물들이 다른 뇌세포를 보호하고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진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이 능력을 상실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블랙쇼 교수는 “특정 바이러스, 박테리아, 심지어 기생충까지 뇌를 감염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반대로 NF1 세포가 활성화하지 않았다면, 감염된 뇌세포를 자라게 하고 신경계를 통해 감염을 확산시켜 큰 재앙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에 참여한 노틀담대학교 생물과학부 데이비드 하이드(David Hyde) 교수는 “이 연구는 망막 뉴런의 재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원리의 증거다. 뇌의 뉴런재생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향후 신경 손상과 재생에 대한 세포 반응에 대한 보다 상세한 유전자 지도를 만들어 인간의 DNA에 숨겨진 재생 능력을 활성화시킬 방법을 찾을 계획이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최근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