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유럽에 창궐했던 매독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당시 많은 사람은 서인도제도를 발견하고 돌아온 콜럼버스의 배에 매독균이 함께 밀항해 들어왔다고 믿었다. 참혹한 증상을 동반한 매독이 ‘신대륙의 복수’라고 불린 연유다. 하지만 근래의 생화학적 연구는 이런 가설을 부인한다. 원래부터 유럽에 있던 균이 우연히도 신대륙 발견 직후 발호했다는 것이다. 매독은 주로 유럽 귀족과 왕실에서 유행했고 몇몇 나라에선 왕조가 바뀌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지배 계층에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지 못하게 됨으로써 사회 계층 간 이동이 활발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역사상 가장 가혹한 전염병 피해는 14세기 중세 유럽을 휩쓴 페스트였다. 몽골군의 침략에 의해 유입된 이 공포의 연쇄살인범은 유럽 인구를 절반으로 줄어들게 했다. 흔히 얕잡아 보는 독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은 제1차 세계대전 무렵 유행한 스페인 독감이 전쟁 사망자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냈다는 사실이 입증한다.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과의 투쟁사이기도 하다. 예측하지 못한 바이러스의 출현은 인류에게 막대한 재앙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물줄기를 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인류는 재앙을 극복하면서 과학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의학이 질병을 앞서 가는 법은 없다는 사실이다. 의학이 발전하는 동안 바이러스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더구나 신종 플루와 같은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은 질병과의 싸움에 새로운 단계를 예고하고 있다. 어느 틈에 오만에 빠진 인류에게 겸허함을 되찾으라는 자연의 경고는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조인스닷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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