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이 직업환경의학을 깨웠다”
“6월 항쟁이 직업환경의학을 깨웠다”
[인터뷰]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어디가 아프냐”보다는 “어디서 일하냐”고 묻는 의사

직업 또는 환경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역할 수행

“일 때문에 아픈 노동자 없는 사회 위해 계속 노력”
  • 서정필
  • 승인 2020.02.0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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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1987년 6월 항쟁 후 9월까지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을 겪으며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이듬해인 1988년 ‘문송면 씨 사건’과 ‘원진레이온 사건’이 잇달아 터졌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당시 예방의학의 한 분야이던 직업환경의학이 분리돼 독립 학문 분야가 됐다.”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직업환경의학이 예방의학의 한 분야에서 다른 독립된 진료과로 자리잡게 된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문송면 씨 사건’이란 1988년 7월 서울 영등포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만 16세 소년이 고통 속에 숨진 사건을 의미한다. 사망 원인은 수은 중독. 온도계에 수은을 넣는 일 등을 두 달 가량 하면서 병을 얻었다. 몇 번이나 다른 병원을 전전하던 끝에 만난 한 의사가 “어디서 일하다가 그렇게 됐나?”라고 묻지 않았다면 왜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을지 모른다.

소년 문송면의 죽음은 같은 해 ‘원진레이온 사건’과 더불어 우리사회에 직업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본격적인 산업재해 추방과 조직적인 노동자 건강 운동의 시발점이 됐으며 예방의학의 한 분야이던 직업환경의학이 독립 학문 분야가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직업환경의학과는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른 채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의 죽음을 계기로 직업병과 관련된 체계적인 조사와 진료를 위해 만들어진 진료과다.

 

직업과 질병의 관계 밝히는 것이 업무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은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에 집중하는 다른 진료과 의사들과 달리 환자가 ‘무슨 일을 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다른 진료과 의사들과 다르다.

김 교수는 “직업환경의학과는 직업 및 환경으로 인한 인체손상과 질환을 방지하는 예방의학과라고 할 수 있다”며 “진단과 치료가 주요업무인 다른 진료과와 달리 직업 또는 환경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주된 업무”라고 설명했다.

특수건강검진, 직업병, 건강진단과 사후관리, 업무 관련성 평가, 업무 적합성 평가, 직무 스트레스 관리 등 진료실 안에서의 역할 만큼 진료실 밖에서의 활동도 중요하다.

산업안전보건공단, 근로복지공단 등 국가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현재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을 점검하고 응급의학과 등과 힘을 모아 새로운 직업병 의심사례에 대한 연구도 진행한다.

 

2000년대부터 새로운 직업병도 다뤄

김 교수는 1990년대 후반까지는 중독성 질환이나 진폐증 등 그 원인이 명확한 것들을 주로 다뤘지만 2000년 초반부터는 ‘직업병’이라고 여겨지지 않던 질환이 새롭게 직업병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과거부터 있던 병이지만 직업병이라고 인식되지 않다가 인식 변화를 통해 새롭게 직업병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산업구조의 변화를 통해 새롭게 직업병원의 범주 안에 포함되는 것인데 근골격계질환이나 심혈관계 질환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중독이나 진폐증과 달리 근골격계질환이나 심혈관계질환 등은 직업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환자마다 직업으로 인한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면밀한 평가를 진행하게 된다”며 “이것이 바로 업무관련성 평가”라고 설명했다.

업무관련성 평가를 의뢰하면 직업 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은 유기화합물, 중금속, 분진, 산과 알칼리, 진동 등 신체에 영향을 주는 환경 뿐 아니라 교대작업 장시간 노동, 직무 스트레스, 직장 폭력 등 사회적인 요인에 대해서도 파악한다.

김 교수는 “질환과 업무관련성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근로자 컴퓨터 로그인 상태, 교통카드 사용이력까지 조사한다”고 말했다.

업무관련성 평가가 질환이 생긴 후, 그 질환이 업무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사후 처방적 성격이라면 ‘업무적합성 평가’는 직업 수행으로 인해 생기는 질환을 사전에 예방하는 성격을 갖는다.

김 교수는 “우울증이 있는 30대인데 기관사 업무를 할 수 있는지, 당뇨를 앓고 있는 70대가 택시 운전을 할 수 있는지 등을 평가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며 “일을 할 수 없는 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일을 수행 하다가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을 미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마다 업무관련성 평가가 필수적으로 제도화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와 직업과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김교수는 “이전까지 묵묵히 고객의 폭언을 감당해야 했던 콜센터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며 ‘감정노동’ 이라는 말이 보편화 될 수 있었던 것이나, (또는) 장시간 노동이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듯 우리 사회가 이제 노동자의 몸 건강은 물론 마음 건강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을 하려면

김 교수는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을 하려면 단지 건강검진 열심히 받고, 술, 담배 적게 하고, 운동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갖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이러한 불건강 행위를 유발하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직업환경의학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직무스트레스, 장시간노동, 저임금, 열악한 작업환경을 바꾸어내는 역할을 자신의 주요한 역할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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