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기자]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를 깨뜨린 제네릭에 1년간 독점권을 부여하는 우선판매품목허가(우판권) 제도를 손보겠다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도 개선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당초 식약처는 늦어도 올해 상반기에는 개선안을 공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으나, 8월의 절반이 넘어선 지금까지도 발표가 나오지 않은 상황. 식약처는 각계 의견에 대한 검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식약처는 올해 초, 한미 FTA 체결에 따라 지난 2015년 3월 도입한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도의 가장 중요한 규정 중 하나인 우선판매품목허가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개선안은 4월까지 마련하겠다는 방침이었다.
우선판매품목허가는 최초로 특허 도전에 성공한 1개 또는 일부 제약사에만 제네릭 독점권을 부여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첫 특허 도전이 있던 날로부터 14일 이내에만 특허심판을 청구하면 모두 최초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따라 다수 제약사가 우선판매품목허가 자격을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공동생동이나 위탁생산을 통해 더 많은 제약사가 제네릭 독점권을 획득하고 있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식약처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늦어도 올해 6월까지는 개선안을 행정예고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쉽게 풀어내기 어려운 쟁점이 등장하면서 작업 자체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우선판매품목허가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헬스코리아뉴스와의 통화에서 "의견 검토 과정에서 허가특허연계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며 "(허가특허연계제도 폐지는) 한미 FTA와 관련된 민감한 이슈여서 검토에 시간이 걸린다. 천천히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허가특허연계제도 폐지 주장은 시민단체 측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7월 특허청과 식약처, 제약사, 법조계, 시민단체 등 다수 전문가가 모인 가운데 열린 의약품 허가특허연계 제도 정책소통 협의체 정기 회의에서 시민단체 측은 우선판매 품목허가제도 폐지 의견을 피력했다.
이 협의체는 이달 중 열리는 수시 회의에서 우선판매 품목허가제도 폐지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들 시민단체는 허가특허연계제도가 시행되기 이전부터 "우선판매품목허가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부당하다"며 도입을 반대했다.
당시 시민단체는 ▲오리지널뿐 아니라 제네릭에도 독점 이윤을 줄 수 있는 점 ▲부실 특허는 공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 ▲오리지널의 특허가 깨졌는데도 9개월 동안 후속 제네릭이 진입할 수 없어 사실상 오리지널의 특허 기간이 연장되는 효과가 있는 점 ▲제네릭 독점 기간이 과도한 보상이라는 점 등을 들며 우선판매품목허가를 포함, 허가특허연계 제도를 도입하려는 식약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우선판매품목허가는 허가특허연계제도의 핵심 규정이다. 이를 폐지하면 허가특허연계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다. 특히 일부 제약사에만 제네릭 독점권을 부여해 오리지널을 위협하는 다른 제네릭의 진입을 늦추는 효과가 있어 한미 FTA 협상 당시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국내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규정을 수정해 현재는 다수 제약사가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받을 수 있어 제네릭 진입 지연 효과가 미국 측의 기대 만큼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우선판매품목허가를 폐지하면 미국 측은 한미 FTA 위반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외교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식약처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식약처 관계자는 "(시민단체 측이 우선판매품목허가 폐지와 관련해) 의견을 개진하는 부분이 있어서 청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이 때문에 개선안 확정이 언제 완료된다고 내다보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마냥 길게 끌 수 있는 사안도 아닌 것 같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관계자는 "(협의체에서) 논의하면서 의견을 조정할 계획이다. 많이 늦춰질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우선판매품목허가 폐지 주장이) 현재 의견 검토 단계에서 가장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