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경영 리더십 - 유한양행] 유일한이 세운 민족기업 ... 오너 없는 '유일한' 제약사
[제약회사 경영 리더십 - 유한양행] 유일한이 세운 민족기업 ... 오너 없는 '유일한' 제약사
  • 곽은영 기자
  • admin@hkn24.com
  • 승인 2019.03.12 0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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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오너는 그 기업의 상징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에서는 기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너 하기에 따라서 기업이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너의 역할은 매우 막중하다. 풍부한 경영지식과 리더십을 갖추고 있음은 물론, 미래를 읽는 혜안도 필요하다. 올해로 122년의 역사를 아로새긴 한국제약산업의 더 높은 발전을 위해 우리나라 제약기업 오너(경영진)의 역량과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본사 전경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본사 전경

 

독식 경계한 유일한 박사 .... 주인 없는 ‘공익기업’ 설립

유한양행은 1926년 독립 운동가이면서 교육자이자 기업가였던 고 유일한 박사(1895년 1월 15일~1971년 3월 11일, 향년 76세)가 세운 기업이다. 그의 이름답게 유한양행은 국내에서 오너가 없는 유일한 제약사이기도 하다. 오늘날 유한양행이 민족기업, 공익기업, 애국기업으로 불리는 것도 나라사랑에 대한 유 박사의 남다른 발자취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유일한 박사는 일제치하에서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제약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기업활동을 통해 얻은 이윤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되돌려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선도적으로 실천했던 인물이다. 실제로 그는 1936년 개인소유였던 유한양행을 법인체 주식회사로 전환한데 이어 1939년에는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 본인 소유 지분 52%를 사원들에게 나눠줬다. 그런 영향일까. 유한양행은 1975년 노조 설립 이후 단 한 번의 노사분규도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 박사는 오너로 있는 동안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키는 데 집중했다. 이는 대부분의 국내 제약사가 오너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특히 본인 부재 시 회사에 관계하고 있는 친인척으로 인해 알력다툼이 일어날 것을 경계해 사내 친인척을 전원 해고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아들 유일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1969년 유한양행 부사장에 취임한 유일선은 기업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경영스타일로 유일한 박사와 마찰을 일으켰다. 처음부터 2세 경영을 탐탁지 않아 했던 유 박사는 유 부사장을 해고하고 당시 조권순 전무에게 경영권을 인계하며 본인도 일선에서 은퇴했다.

 

유한재단 역대 이사장(유한재단 홈피 캡처)
유한재단 역대 이사장(유한재단 홈피 캡처). 유한재단의 현재(제8대) 이사장은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맡고 있다.

 

유한재단 메인 홈페이지 캡처
유한재단 메인 홈페이지 캡처

지금의 유한재단은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가 평생을 바쳐온 교육 및 장학사업, 사회환원사업을 보다 항구적으로 발전시켜야겠다는 결심으로 1970년 개인주식 8만3000여주를 기탁하여 발족시킨 것이다. 설립 당시 유한재단의 이름은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 기금'. 유박사는 이듬해인 1971년 사후 유언장을 통해 전재산을 이 기금에 출연했다고 전해진다.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은 1977년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규정에 따라 재단법인 유한재단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소유주식 일부를 유한학원과 분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한재단은 유한양행의 최대주주이자 모태다. 유 박사의 외동딸인 고 유재라 여사도 1991년 생전에 틈틈이 모은 전재산(시가 200억원 상당)을 한톨도 남김없이 유한재단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오너가의 이러한 헌신은 기업의 지배구조를 탄탄히 하고 오늘날 유한양행이 민족기업, 애국기업으로 우뚝 서게 하는 초석이 됐다. 소유 개념 자체가 없는 공익재단이 회사를 소유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수익을 사회로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런 유일한 박사를 기리기 위해 올들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3.1절을 앞두고 그의 묘소를 참배, 또 한 번 세간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유 박사의 묘소를 직접 참배한 우리나라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유일하다. [관련 기사 : 문재인 대통령, 유한양행 故 유일한 박사 묘소 참배 이유는?]

 

“유일한은 가고 연만희만 남았다” 

고 유일한 박사(유한양행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유한양행 창업주)

유 박사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유한양행은 1969년부터 오너가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1969년부터 1979년까지 재임한 조권순 사장 이후 박춘거, 홍병규, 연만희, 김태훈, 김선진, 차중근, 김윤섭, 최상후 대표이사를 거쳐 2015년부터 현재까지 이정희 사장이 이끌고 있다. 이들은 모두 평사원 출신이다. 전문경영인 체제에 따라 내부승진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1936년 유한양행이 주식회사로 전환한 이후를 기준으로 하면 지금까지 대표이사 자리를 거쳐 간 사람은 유 박사를 포함 모두 17명이다. 유한양행 CEO(최고경영자)의 임기는 3년, 재선임되면 6년까지 가능하다. 이들 CEO들은 임기를 마치면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회사를 떠나는 것이 유한양행의 전통이다.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가 아낌없이 봉사하고 나눠준 뒤, 떠났던 것처럼.

 

유한양행 역대 경영진
유한양행 역대 경영진

하지만 유일하게 지금까지 유한양행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창업주와 함께 근무했다는 올해 나이 90세의 연만희 고문(1930년생)이다. 1961년 유한양행에 입사한 연 고문은 입사 8년 만에 상무이사로 진급, 전무이사, 사장, 회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유한재단 이사장까지 역임한, 어찌보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후 지금까지 고문이라는 이름으로 재단 이사로 활동하며 58년째 유한양행에 몸담고 있다. 제약업계 역사상 이처럼 오랜기간 한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오너가 아니면서 90세가 되도록 장기 근속하는 사람은 그 유래를 찾기 어렵다. “유일한은 가고 연만희만 남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58년 최장기 근속 기록 ... 엇갈리는 평가

연 고문은 표면상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한양행 성장 초기부터 사내에서 자리를 공고히 해온 탓에 여전히 경영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제약업계 안팎의 공공연한 시각이다.

평가는 엇갈린다.

평사원에서 회장까지 오르며 제약업계 샐러리맨의 신화로 떠오른 그가 회사의 방향을 잡아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유한양행의 발전에 최대 걸림돌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만만치 않다.

 

연만희 유한양행 고문 (유한재단 이사)
연만희 유한양행 고문(유한재단 이사)

우선 유한양행에 몸담고 있는 현직 직원들은 연 고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다만,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직위가 높을수록 그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다. 

“회사의 중요 사항은 현직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등기이사들이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연 고문은 관여하지 않는다. 유한재단도 유한양행의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유한양행에 근무하는 한 간부는 연 고문의 영향력에 대해 묻자, 마치 방어막을 치듯 이같이 말했다.

이런 호의적 평가는 그가 유한양행의 산증인으로서 오너 일가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등 유일한 박사의 창업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나름 기여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유일한 박사의 딸 유재라 이사장이 유한재단 이사로 취임할 때 그는 유일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평사원들의 인식은 달랐다. “연 고문이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느냐”고 물으면 “그렇죠 뭐...”라든가, “그렇다고 봐야죠” 등의 대답이 돌아온다. 같은 기업의 직원들 사이에도 직급에 따라 이처럼 온도차가 있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연 고문의 조직내 입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으로, 오너 일가는 발을 디디지 못하게 하면서 정작 자신은 물러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인식의 차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아낌없이 주고 간 설립자 ... 50억대 자산가로 변신한 고문

그의 영향력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반증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본지가 최근 공시자료를 토대로 연 고문의 유한양행 주식 규모를 살펴본 결과, 그는 유한양행 보통주 0.07%(8474주)와 우선주 5.91%(1만3965주) 등 총 0.17%(2만2439)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를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최소 50억원에 달한다. 이는 그동안의 CEO들이 임기 동안 부득이하게 보유하게 됐던 주식을 남김없이 정리하고 회사를 떠났던 전통에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유한양행 지배구조
유한양행 지배구조

 

“유일한 박사, 지하에서 통탄할 일” ... 견제는 누가?

이 때문에 직·간접으로 유한양행이나 유한재단과 관계가 있는 주변 인사들의 연 고문에 대한 평가는 더욱 곱지 않다.

유일한 박사를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유 박사는 경영진 자리도 임기를 정해놓고 자리에 오래 있지 않도록 해왔다”며 “이미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와야 할 사람이 소유주처럼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을 유 박사님이 아신다면 땅속에서도 통탄할 일”이라고 분개했다.

그는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선의로 비어둔 자리에 은근히 앉은 형국”이라며 “유한양행이 지금까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 왔지만 (연 고문을) 견제할 사람이 없어 그 안에서 유일한 정신이 얼마만큼 정확하게 실현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답한 심경을 피력했다. 

유일한 박사의 뜻이 훼손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말하기조차 조심스럽다. (유한양행 사람들이) 다들 몸을 사린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유한양행을 아꼈던 주변 인사들은 무엇보다 연 고문이 유한양행의 최대주주인 유한재단과 특수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가장 우려한다. 유한양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그가 주인 없는 유한재단을 움직이면 얼마든지 사장 선임 등 인사에 있어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직에 있는 사람들은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해) 불이익을 당할까봐 말할 수 없는 법”이라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체가 그의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그는 재단의 이사장이 아님에도 유한측에서 제공하는 기사가 딸린 고급 차량을 이용하고, 요즘도 평일이면 거의 빠짐없이 유한양행 4층에 있는 유한재단에 출근할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보통 제약회사 임원들이 고문으로 물러날 경우 길어야 1~2년 동안 비상근 대우를 받다가 회사를 떠나는 현실과도 동떨어진 것으로, 그에 대한 ‘극진한 예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세간에서 “오너 같은 고문, 이사장 같은 이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한양행의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기사가 딸린 회사의 차량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것으로 안다. 그 분은 재단 이사장이나 경영진들과 담소도 하시는데, 나와서 무슨일을 하시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지는 연 고문의 입장을 듣기 위해 유한재단측과 몇 차례 통화를 하고 만남을 시도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이정희표 개혁 리더십 성공할 수 있을까?

유한양행 현 대표이사
이정희 유한양행 현 대표이사

일각에서는 이정희 사장 취임 이후 오픈 이노베이션의 성과로 연만희 고문의 영향력이 약화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선·후배 관계가 확실한 유한양행의 전통상 연 고문측과 사전에 협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관련, 유한양행의 한 직원은 “평소 연 고문은 대표이사 방을 자연스럽게 드나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78년 유한양행에 공채로 입사한 이정희 대표는 그동안 병원영업부 이사, 유통사업부 상무, 마케팅홍보담당 상무이사, 경영관리본부장 전무이사, 총괄 부사장 등 요직을 거쳐 대표이사까지 오른 전문경영인으로, 입사 기준 연 고문의 17년 후배다.

이 사장은 취임 이후 유한양행의 체질 개선을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글로벌 신약 개발에 집중, 지난해 11월 얀센 바이오텍과 약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체결한 계약은 비소세포폐암 치료를 위한 임상 단계 신약 '레이저티닙'의 라이선스 및 공동개발에 관한 것이다.

이어 올해 1월에는 미국 제약 기업 길리어드와 9000억원 상당의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 신약후보 물질에 대한 라이선스 및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유한양행의 이러한 변화는 모두 이정희 사장 취임 이후 나타난 것으로, 일단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일로 의약품 도매상으로 불리던 유한양행에 대한 외부 이미지는 상당 부분 달라졌고, 연 고문의 영향력이 크게 줄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유한양행은 이정희 사장 체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8년의 경우 전년대비 약 8.8% 증가한 1100억원을 R&D에 투자하는가하면, 올해도 50% 이상 증가한 160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그 덕분에 현재 개발중인 신약 파이프라인도 3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신약의 추가 성공여부에 따라 훗날 이정희 대표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물론 많은 국민들은 이런 유한양행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연 유한양행은 유일한 박사가 열망했던 공익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그것은 오롯이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유한양행 구성원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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