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쫓기는 의사들-③]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산부인과 의사들
[빚에 쫓기는 의사들-③]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산부인과 의사들
  • 박수현 기자
  • 승인 2019.03.07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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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돈 잘 번다고 생각하는 전문직종 중 하나가 의사다. 하지만 적정수가를 요구하는 의사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상승하는 인건비와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저수가 정책이 결국 의료시스템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게 의사들의 항변이다. 이런 의사들을 두고 국민들은 ‘의료계가 자기들 배만 불리려 한다’고 비판한다. 실제 개원의들의 상황이 어떤지 취재했다.

[헬스코리아뉴스 / 박수현 기자] “10년 전 분만도중 산모가 사망했다. 이 일로 의료소송을 당해 손해배상금으로 3억을 물게 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내 나이 56살에 겨우 다 갚았다.”

지방의 한 산부인과 개원의 A씨는 “10년전의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머리속이 복잡해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A씨는 “3억 굉장히 큰 돈이다. 개원할 때 진 빚도 다 갚지 못한 상황에서 또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이자만 한 달에 450만원을 냈다. 원금을 갚으려고 매달 300만원씩 저축했다. 근데 나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다. 매달 생활하는데 들어가는 생활비까지 포함하고 임대료에 직원들 월급, 이미 가지고 있는 빚까지 감당하려면 한 달에 1800~2000만원은 벌어야 한다. 근데 여기에 의료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가계가 휘청인다”고 털어놨다.

산부인과를 운영했던 B씨는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를 잃었다.

분만도중 산모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아이도 산소가 부족해서 사망한 사건이 불행의 전주곡이었다. 고위험 산모도 아니었던 탓에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결과 과실이 없는 불가항력적인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가족들은 병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했고 협박 전화와 욕설을 일삼았다.

똑같은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이번에도 무과실 처분이 났지만 환자 가족들은 병원에 살다시피하고 간호사들에게까지 폭언을 가하며 수억원대의 보상금을 요구했다. 이미 홈페이지는 환자 가족들의 항의로 마비가 된 상태였다.

B씨는 “동네에 산모 두 명이 잘못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원래 내원했던 환자들의 발길도 끊겼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병원 문을 닫게 됐다. 이런 일들이 또 일어날까봐 무서워서 분만을 하지 못하겠더라”고 털어놨다. B씨의 아내는 결국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고, 그것이 생의 마지막이었다.

산부인과 전문의 C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C씨의 경우도 B씨와 마찬가지로 여러 번의 의료소송을 겪었다. 과실이 없다고 드러났음에도 의료소송에 휘말렸고 의료사고병원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자연스레 병원은 경영난에 시달리게 됐고 빚더미에 앉았다. 더 이상 회복할 길도 없고 고의가 아니었음에도 의료분쟁을 일으킨다는 주홍글씨가 새겨지자, C씨는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산부인과계의 한 의사는 “주변에 이런 일이 발생해도 다들 쉬쉬해서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보통 의료 관련 분쟁이 일어나면 의사 과실도 있지만 불가항력적인 상황도 있다. 의료사고 난 병원으로 소문나면 병원 매출에 타격이 가서 다들 만나면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경영난 등으로 산부인과 의사 1천명당 5명꼴로 자살”

실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 비율이 인구 1000명당 0.3명으로 세계 1위다. 이 중 산부인과 의사의 자살 비율은 연간 1000명당 5명꼴로 심각한 수준이다.

산부인과계 관계자는 “의료소송 이전에 산부인과 경영도 어렵다. 낮은 수가 때문”이라며 “병원에서 자연 분만 시 건강보험 진료 수가는 최저 53만2240원이다. 산모 한 명의 아이를 받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최대 8~10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이런 낮은 수가체계에서 임대료, 관리비, 직원 월급, 개인 생활비 등을 충당하려면 병·의원들은 버틸 힘이 없다”고 토로했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제도 개선돼야”

이 관계자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란 의료인이 충분히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사고를 말한다. 정부는 이런 사고에 대한 보상을 위해 2013년 4월부터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피해에 대한 보상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에 따라 분만의료기관은 보상재원의 30%를 분담하고 있지만 보상액이 커질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산부인관계 관계자들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란 의료 과실이 없거나, 혹은 의료 과실을 입증할 수 없는 사고임에도 분만 의료기관이 강제로 분담하도록 하는 것은 사회보장적 제도의 개념에 맞지 않고, 민법상 ‘과실 책임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불합리한 제도”라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의료인의 재산권을 정부가 침해한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지난 1월 보건복지부에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산부인과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보상재원의 30%를 분만 의료기관이 부담하고 있지만, 실제 일본과 대만은 산과 무과실 보상금 제도를 운영해서 이 경우는 정부가 재원의 100%를 지원하고 있다”며 “합리적인 의료분쟁의 조정제도가 정착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저출산·저수가·고위험·고비용 등 4중고에 시달리는 산부인과 

“해법은 수가인상”

현재 우리나라 산부인과는 저출산, 저수가, 고위험, 고비용이라는 4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 환자가 없고, 출산과정에서 위험도 높다. 여기에 수가마저 낮아 고비용을 들여 분만을 해도 산부인과에는 남는 것이 없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끝없이 추락하는 산부인과 개원가 위기의 해법으로 “산부인과의 수가 인상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 이사는 “임신 출산과 관계되는 모든 대상이 보험 급여로, 산모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적인 변화가 두드러진다”며 “초음파의 급여화 등 개원가에서 통상적으로 받아오던 비급여 비용들이 급여화 됐다. 보험 수가를 올려 주지 못할망정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오히려 저수가의 급여화가 가속되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미국의 한 산부인과에서 제왕절개 분만수술을 하고 있다.
미국의 한 산부인과에서 제왕절개 분만수술을 하고 있다.

산부인과계가 더욱 걱정하는 점은 내년부터 임신부가 제왕절개 분만 수술을 받을 경우 수술과 입원비용 전액을 건강보험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비급여였던 입원 병실료마저 급여로 바뀐다. 분만 수가 부족분을 비급여 병실료로 겨우 대체해왔던 산부인과 입장에서는 엎친데 덮친격의 위기를 맞게 되는 셈이다. 결국 불꺼지는 산부인과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한탄이다.

김재연 이사는 “산부인과 수가는 당분간이라도 타과에 비해 높게 인상하고, 임신 20주부터 신생아 1개월까지의 수가는 파격적으로 100% 이상 인상할 필요가 있다”며 “모든 전문과목에 대해 전반적으로 각 과목 간 수가를 차등 인상하여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어, 이를 위해 한시적으로 필수 진료 과목을 지원하기 위한 ‘과목별 가산율’ 제도를 운영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저출산 쇼크 먼저 겪은 일본, 4년간 2조 이상 재정 산부인과에 투입”

김 이사는 “저 출산 쇼크를 먼저 겪은 일본은 산부인과 의사 부족 문제 역시 우리보다 앞서 겪었다”고 전했다.

김 이사에 따르면 일본은 의료사고 관련 소송, 분만 기피 등으로 인해 1993년 4286개였던 분만 병원(소형 진료소 포함)이 2008년 2567개로 줄었고, 2004년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자는 총 101명에 불과했다. 이같은 상황에 일본 정부는 2006년부터 2010년 사이 2100억엔, 우리 돈으로 약 2조원 넘는 재정을 추가로 투입해 분만 비용 등을 현실화하고 국가 지원을 늘렸다.

정부와 병원이 분만의사에게 분만 한 건당 1만 엔(야간에는 2만엔 추가)을 지급했고, 산부인과 의사들에 대한 지원도 늘렸다. 해당 지자체에서 5년간 근무하는 조건으로 산부인과에 진학하는 의대생 90~100명에게 월 5만~10만 엔(75만~150만원)가량의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일본은 또 출산한 여성 의사의 복직 비율을 높이기 위해 베이비시터 비용 등을 지원하고, 여성 의사 3명이 일반 의사 2명의 역할을 하는 잡 셰어링 제도도 운영 중이다.

김 이사는 “산부인과 숫자와 산부인과 전공의 수는 해마다 줄고 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에 1938개였던 산부인과 의원 수는 2011년 현재 1508개로 줄었고, 전문의 배출 수도 2003년 236명에서 2012년에 96명으로 줄었다”며 “지금처럼 저출산이 진행되고 대책 마련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산부인과 의사까지 수입해야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산부인과가 저출산·저수가·고위험·고비용 등 4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분만 수가가 지난해 50% 올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OECD 평균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의료사고 발생률도 높다”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복지부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과 관련해 무과실 피해보상 재원 부담까지 의료진에게 부담키로 하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의 위기는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고 한숨을 몰아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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