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박정식 기자] 현재 국내에서 보건의료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인정보 비식별화에 대한 법적·제도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생명공학정책연구소가 발간한 ‘바이오인 프로’에는 이 같은 지적이 담긴 연구 보고서(보건의료 데이터 비식별화:문제점과 대안)가 실렸다.
보고서를 작성한 삼성융합의과학원 디지털헬스학과 신수용 조교수는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해 질병진단, 예후 예측 등에서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며 보건의료 분야에서 빅데이터의 활용은 보건의료 질 향상과 서비스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빅데이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의료 및 건강 관련 정보 수집이 중요하며, 대량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비식별화가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다만 신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법·제도적 근거가 미흡해 보건의료 데이터에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며 “이에 대한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개인정보 보호법, 문제는 용어의 ‘모호성·포괄성’
국내에서 보건의료 데이터의 비식별화를 적용할 수 있는 법으로는 개인정보 보호법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은 용어가 모호하며,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신 교수는 지적했다.
일례로 개인정보 보호법을 보면 개인정보에 대해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해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개인정보가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인 개인식별정보로 생각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개인정보와 개인식별정보는 엄연히 다르지만 단순히 개인정보라 정의해 혼란을 유발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개인정보 보호법에는 비식별, 재식별 등 필수적인 용어를 정의하고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비식별화, 익명화, 가명화 등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가진 용어들이 혼재돼 있다.
신 교수는 “용어를 정의하고 있지 않아 사용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을 할 수 있다”며 “EU의 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처럼 용어부터 명확히 정의를 해야 보다 건설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대안은 ‘생명윤리법 활용’
신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법·제도적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생명윤리법 활용’을 제시했다.
물론 생명윤리법은 인체유래물 연구에 대한 특별법이기에 적용 범위가 다르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생명윤리법 제3장(인간대상연구 및 연구대상자 보호)에 따르면 보건의료 연구 중에서 생명윤리법의 적용을 받지 않은 것은 현재 장내미생물 연구 밖에 없다. 또한 그 외의 모든 연구는 생명윤리법에 의해 기관윤리심의위원회(IRB)의 연구윤리 심의를 통과해야만 한다.
신 교수는 “현실적으로 의료기관에서는 환자정보를 활용할 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활동을 생명윤리법에 준거해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며, 비식별화 된 정보들의 적정성 여부도 IRB에서 심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각 기관마다 IRB의 판단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나 새로운 법안을 만드는 것 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접근”이라며 “생명윤리법을 상위법으로 하는 보건의료 데이터 비식별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