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주 영리병원이 의미하는 것
[사설] 제주 영리병원이 의미하는 것
  • 헬스코리아뉴스
  • 승인 2018.12.0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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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뉴스] 원희룡 제주지사가 급기야 일을 냈다. 국내 영리병원 1호로 기록될 녹지국제병원(서귀포시 동흥동 헬스케어타운)의 개원을 공식 허가한 것이다. 녹지국제병원은 중국의 녹지그룹이 전액을 투자한 영리추구 병원이다. 여기에 우리의 의료자원을 합작한 구조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리병원은 의료체계의 왜곡 등 많은 부작용 때문에 지난 2005년 추진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우선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체계가 크게 흔들리고 의료서비스가 ‘부익부 빈익빈’ 형태로 후퇴할 수 있다. 출발은 외국인 진료에 방점을 찍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내국인까지 진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기저기서 영리병원 설립에 나설 것이고 실력있는 의료진은 모두 영리병원으로 빠져나갈 공산이 크다.

영리병원은 특성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보험이 된다고 해도 극히 제한적이거나 민간보험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돈 많은 부유층은 영리병원을, 가난한 자는 일반 병의원을 이용하는 의료 이원화체계로 인해 계층간 갈등과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게 자명하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평등, 이른바 '상대적 박탈감'은 질병보다 무서운 것이다.

불평등 없는 의료서비스를 추구하고 있는 현행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자본이 의료를 지배하는 미국식 의료체계의 답습이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원 지사는 외국인 진료로 제한한다는 조건부 허가방침을 밝혔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구든 역차별 문제를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 결국은 내국인의 기업형 영리병원 개설을 막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녹지국제병원의 내국인 진료 역시 결국은 허용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영리병원은 이름 그대로 기업처럼 이윤을 남겨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거대자본이 외국인만을 보고 병원을 개원할 까닭이 없다. 설령 중국인 등 외국인만을 진료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한국 의료계는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다. 비급여 항목이 많아 돈 잘버는 진료과목으로 인식되고 있는 한국의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을 이용해오던 의료관광객이 대거 영리병원으로 빠져나갈 개연성이 높다. 녹지국제병원도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 돈 잘버는 진료과목을 개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리병원이 독버섯처럼 늘어나면 결국 의료비는 폭등할 수밖에 없다. 소아의 치료비가 성인을 뛰어넘고 간단한 외과 수술 한번에도 수십만 원, 수백만 원을 지불해야할지 모른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이윤을 따지는 영화 ‘식코’는 미국식 의료보험체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리병원은 필연적으로 민영보험시장의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우리 아이들마저 이윤추구의 제물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모들은 폭등한 의료비에도 불구하고 영리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가능한 일이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제주 영리병원 1호 개설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 포털사이트는 원희룡 지사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영리병원 허용에 대한 비판 여론을 한미다로 요약하면 “원희룡, 너 미쳤구나”다. 당초 약속과 달리, 도민들의 공론조사 결과(영리병원 불허)까지 뒤집으며 영리병원을 허용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제주의 미래를 위해 고심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원 지사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녹지국제병원은 2015년 정부의 사업 승인을 받아 시설 투자를 이미 마친 상태다. 따라서 불허를 결정할 경우, 외국자본의 한국 투자에 미칠 영향, 한·중 외교 문제, 국가 신인도 하락 등 이런저런 전후 사정을 감안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어떤 것도 국민의 건강권에 앞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 지사의 이번 결정은 신중하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같은 맥락에서 일련의 우려들을 ‘지나친 기우’로 치부해버리는 영리병원 찬성론자들의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강둑의 붕괴는 미세한 균열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와 지자체는 스스로 병리병원의 물길을 터주었으니,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지금의 결정이 장래에 다가올 비극의 서막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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