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사 손 들어준 韓정부 … 국내사 '부글부글'
다국적 제약사 손 들어준 韓정부 … 국내사 '부글부글'
'글로벌 신약 약가우대 제도' 변질 ... 제약바이오協 "미국 요구에 굴복한 개악"
"국내 제약사 아무리 탁월한 신약개발해도 약가우대 못받아"
  • 이순호 기자
  • admin@hkn24.com
  • 승인 2018.11.0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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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기자] 국내 제약사의 신약 개발을 촉진하고자 도입한 '글로벌 신약 약가우대 제도'가 대폭 수정됐다. 애초 국내 제약사들을 위해 마련했던 제도이지만, 이번 개정으로 사실상 다국적 제약사들에 더 유리한 제도로 변질됐다.

정부는 이미 한미 FTA 개정 협상 시 양측 정부가 한미 FTA에 합치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정하기로 원칙적 합의했고, 이에 따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과 주한 미 대사관 차석 대사가 서한을 교환한 데 따른 후속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 제약업계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처사로 애초 취지가 무색해졌다"며 이번 개정을 두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9일 성명서를 내고 "이번 개정안이 사실상 미국 측의 요구에 굴복한 개악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정부가 자국 제약기업의 연구개발 의지를 말살하는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했다"고 유감을 표하면서 정부에 개정안 전면 수정을 촉구했다.

주로 정부와 물밑 협상을 통해 사안을 해결하던 협회의 행보와 비교할 때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만큼 이번 개정안이 국내 제약사에 불합리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신약 약가우대 제도는 정부가 국내 제약사들의 글로벌 혁신신약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혁신형 제약기업, R&D 비중이 높은 기업 등(기업 요건)이 국내에서 세계최초로 허가를 받은 신약이거나 국내에서 전 공정 생산한 신약 또는 국내 기업과 외국계 제약기업이 공동 개발한 신약,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신약(품목 요건) 중 한 가지에 해당하면 약값을 10% 우대해주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이번 개정으로 이 같은 조항들은 모두 삭제되고 완전히 새로운 제도로 변질됐다.

먼저 기업 요건은 WHO가 추천하는 필수의약품이나 약사법에 따른 국가필수의약품을 공급하는 기업으로 바뀌었다. 개정안만 놓고 볼 때 제약사의 연구 개발 의지나 R&D 규모와 관계없이 필수의약품 1종만 공급하면 요건을 만족하는 것이다.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다가 적발돼 행정처분이나 유죄판결을 받은 업체는 제외되지만, 개정안 시행 이후부터 적용되므로 현재로서는 필수의약품 1종만 공급해도 모든 제약사가 기업 요건을 만족할 수 있다.

기존 제도대로라면 국내에서 연구개발 및 생산을 하지 않는 다국적 제약사(사실상 의약품 도매상)는 애초에 우대 요건조차 만족하기가 어려웠으나, 이번 개정으로 쉽게 문턱을 넘을 수 있게 됐다.

품목 요건은 다국적 제약사에 더 유리해졌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새로운 기전 또는 물질 ▲대체 가능한 다른 치료법(약제 포함)이 없는 경우 ▲생존기간의 상당기간 연장 등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개선이 입증된 경우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획기적의약품지정(BTD) 또는 유럽의약청(EMA)의 신속심사(PRIME)로 허가된 경우 ▲희귀질환치료제나 항암제 등 5개 요건을 모두 만족해야 약가 우대를 받을 수 있다.

현재 대체 가능한 다른 치료법이나 약제가 없는 질환은 소수에 불과하다. 치료제 범위도 희귀질환치료제나 항암제로 국한됐다. 여기에 FDA나 EMA의 심사까지 받아야 한다.

이 개정안대로라면 글로벌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의 희귀질환치료제 정도만 국내에서 약가 우대를 받을 수 있다. 이제 막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국내 제약사 입장에서는 문턱이 매우 높아진 셈이다.

제약바이오협회는 "이번 개정안은 연구개발, 국내 임상 수행 등의 관련 조항이 전면 삭제돼 애초 취지가 무색해졌다"며 "미국의 압력에 밀려 제도 본연의 최우선 목적인 국내 제약기업의 연구개발 장려를 포기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정안대로라면 국내 제약사는 아무리 탁월한 신약을 개발하더라도 무조건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신속심사허가를 받아야만 약가우대를 받을 수 있다"며 "미국 제약기업의 권익 보호를 위해 한국 정부가 대한민국 미래 성장동력의 커다란 밑거름인 자국 제약기업체들의 연구개발 의지를 무참히 짓밟은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협회 관계자는 "(제약업계) 현장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해도해도 너무 했다는 분위기"라며 "협회도 개정안 내용을 분석하고 제약업계 의견을 들어본 결과 문제가 크다고 판단, 전면 재수정을 요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애초 제도의 취지는 국내 제약사의 R&D를 독려하고 R&D를 많이 하는 혁신형 제약기업을 우대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미국의 요구로 제도의 의미가 상실됐다"며 "아무리 미국의 압력이 컸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하면서 R&D를 하라는 것은 사실상 연구개발 하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일갈했다.

 

국내 제약업계는 이번 개정안을 보고 한 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국내 제약사를 위한 제도가 FTA 협상으로 졸지에 다국적 제약사를 위한 제도로 변질됐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국내 제약업계는 이번 개정안을 보고 한 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국내 제약사를 위한 제도가 FTA 협상으로 졸지에 다국적 제약사를 위한 제도로 변질됐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국내 제약업계 "기도 안 찰 노릇"

국내 제약업계는 이번 개정안을 보고 한 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국내 제약사를 위한 제도가 FTA 협상으로 졸지에 다국적 제약사를 위한 제도로 변질됐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국내 A제약사 관계자는 "실질적으로는 국내 신약 개발을 권장하는 게 아니라 외자 기업들 의견들만 반영됐다"며 "(FDA나 EMA 심사를 위해) 외국에 등록하려면 임상비용이나 이런 것을 지원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너무 황당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정부기관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할 말이 없을 정도"라고 개탄했다.

B제약사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사들은 고가 희귀질환 치료제나 항암제로 이익을 내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약가 협상 때문에 기대만큼 수익을 내지 못했다"며 "이번 개정안은 이런 다국적사의 요구를 반영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국내 제약사 입장에서는 세부 조건이 너무 말이 안된다. 앞으로 국내 제약사들은 (약가 우대받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제도의 취지가 유명무실해졌다"고 강조했다.

C제약사 관계자는 "전 정부에서도 콜롬버스프로젝트나 혁신형제약사 등 많은 제도를 도입해 운용했지만, 혜택은 별로 없었다"며 "때문에 애초에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우대' 제도도 큰 기대를 안 했으나, 막상 개정안이 나오니 허탈한 것은 사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과거 일괄 약가인하 당시에도 제약사들이 다 들고일어나 반발했지만, 정부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덩치가 크지도 않고 기간산업이 아닌 데다 규제까지 심하다 보니 (제약사들이) 힘이 없다. 소외당한다는 느낌만 받는다"고 토로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FTA는 명분이고 정부가 선제적으로 미국과 다국적 제약사의 의견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C제약사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사와 미국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할 때는 성명서나 기고가 쏟아지는 등 시그널이 있는데 이번 FTA 개정 협상 시에는 그 신호가 보이지 않았다"며 "개인적으로는 우리 정부가 미국 측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재 정세를 고려해 '스스로' 국내 제약사에 불리한 개정안을 마련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달 17일까지 업계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지만, 국내 제약사들은 유리한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A제약사 관계자는 "(정부가) FTA 합의 사항을 내세우면 국내 제약사들의 뜻을 관철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며 "의견 수렴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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