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에 대한 오해와 진실
백혈병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안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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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1.0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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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종 사무국장
【헬스코리아뉴스】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백혈병이 유전되는 병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백혈병은 유전성 질환이 아니다. 이렇게 ‘백혈병=유전병’으로 인식하게 만드는데 가장 큰 몫을 한 것이 드라마 <가을동화>였다. <가을동화>에서 ‘주인공 은서의 아빠가 백혈병으로 죽었고 그래서 은서도 아빠의 백혈병을 유전받은 것’이라고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연못의 개구리는 맞아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가을동화>가 심어준 백혈병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상식은 이후 수많은 백혈병 환자들의 치료과정에서 그리고 골수이식(=조혈모세포이식) 후에 완치된 백혈병 환자들의 학교생활, 사회생활, 결혼생활 등에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안겨 주었다.

백혈병은 말기 혈액암이지만 위암, 간암, 폐암 등 99% 사망하는 다른 말기 고형암과 달리 일치하는 골수를 찾아서 이식을 받으면 50% 이상 완치될 수 있고 백혈병의 종류에 따라서는 사망 직전까지는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여 그동안 <러브스토리> <라스트콘서트> <아름다운 날들> <팝콘> <안녕 내사랑> <세상 끝까지> <가을동화> <유리구두> 등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다.

이렇게 백혈병 환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들이 관람객이나 시청자들에게 많은 재미와 깊은 감동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국민들에게 백혈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어 이로 인해 수많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깊은 상처와 심각한 피해를 안겨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종영을 앞둔 KBS 일일연속극 <너는 내운명>의 시청률이 40%를 넘고 있다. 40%를 넘는 <너는 내운명>의 시청률 한가운데에는 백혈병이 있다.

극중에서 주인공인 장새벽을 모질게 괴롭혔던 시어머니 서민정과 자신을 버렸던 생모 정미옥 모두 어느 날 갑자기 백혈병에 걸렸고 골수이식을 급하게 받아야 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다행히 시어머니와 막내이모 골수가 일치했지만 막내이모가 임신을 이유로 골수기증을 거부하여 타인 골수를 찾고 있는 중인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장새벽이 HLA유전자검사(=조직적합성검사)를 했더니 골수가 일치하여 시어머님에게 골수를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 골수기증 등록을 했던 장새벽이 생면부지의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를 주기로 동의하였지만 시어머니에게 골수를 주기 위해서 골수기증을 거부한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거부당한 그 백혈병 환자가 바로 생모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새벽이 시어머니와 생모를 두고 누구에게 골수를 줄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대충의 줄거리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흥미진지하고 긴장감을 높이는 설정일지 몰라도 백혈병 환자나 그 가족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운 설정이다.

백혈병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한편 더 있다. MBC 주말연속극 <내인생의 황금기>이다. 최근 시청률이 조금 올랐지만 여전히 10% 중반대의 조금 낮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내인생의 황금기>의 백혈병과 <너는 내운명>의 백혈병는 너무 다르다. <너는 내운명>의 백혈병은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백혈병이지만 <내인생의 황금기>의 백혈병은 현실 속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백혈병이다.

<내인생의 황금기>에서의 이금은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이다. 1997년 한국에서 일치하는 골수를 찾아서 이식을 받았던 미공군 사관생도 성덕바우만도 극중 주인공 이금과 동일한 ‘만성골수성백혈병’이었다. 그러나 1997년도에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던 성덕바우만은 골수이식을 받아야 했지만 2003년 이후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글리벡’이라는 항암제를 먹으면 95% 이상 장기생존이 가능하고 학교생활, 사회생활 등에도 문제가 없어서 더이상 골수이식을 받지 않는다. 고혈압, 당뇨병과 같이 약을 제때 복용하고 잘 관리하면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만성질환이 된 것이다.

물론 글리벡 내성이 생겨서 가속기, 급속기로 진행하면 생명이 위독할 수 있지만 글리벡 내성을 치료하는 신약도 몇 개 더 개발되어 시판되거나 임상시험 중이고 그 효과도 탁월하여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가 급속기로 진행하여 사망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그래서 <너는 내운명>에서 생모가 만성골수성백혈병 중에서도 ‘급속기’라는 설정은 조금 비현실적이고 ‘급속기’라고 하더라도 먼저 글리벡 내성신약으로 먼저 치료한 후 효과가 없을 때 맨 마지막 단계에서 골수이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때에 골수이식을 받는다 하더라도 완치율은 5%대로 극히 저조하다. 즉, 대부분 사망한다.

<내인생의 황금기>는 시청자들에게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이제 약을 꼬박꼬박 먹으며 관리만 잘 하면 자기 수명만큼 살 수 있는 만성질환이고 주인공 이금처럼 육상부 코치 등 사회생활에도 문제가 없으며 당연히 유전되거나 전염되는 질병도 아니다. 다만, 여자의 경우 임신을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음을 드라마 전개상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너는 내운명>의 비현실적인 백혈병 설정은 자꾸만 백혈병 환자와 그 가족들의 얼굴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먼저 타인간 골수가 일치할 확률은 2만5천분의 1에 불과한데도 장새벽과 그의 시어머니 골수가 일치한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우연적이다. 그러나 이것까지는 양보할 수 있다. 그런데 장새벽과 그의 생모의 골수가 일치한다는 것은 도가 지나쳤다. 부모와 자녀간에도 골수가 100% 일치할 수는 있지만 극히 희박한 일이고 거의 대부분 50%만 골수가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새벽이 생모의 골수와 일치한다는 설정은 시청자들에게 골수기증에 대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걱정이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골수기증 거부율은 세계 최고이다. 10명이 골수기증을 하겠다고 등록하였다면 그 중에서 7명이 최종 단계에서 골수기증을 거부하거나 중단한다. 이로 인해 매년 500명 이상의 백혈병 환자들이 골수이식을 통해 완치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더욱이 ‘골수기증을 하면 허리디스크가 생긴다, 성생활에 문제가 생긴다. 임신하지 못한다. 등등’ 골수기증에 관한 잘못된 상식 때문에 <너는 내운명>처럼 형제간에도 골수기증을 거부하는 경우가 우리나라에서는 흔하게 발생하고 있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최근 골수이식을 통한 완치율이 높아졌고 만성골수성백혈병은 글리벡과 같은 표적항암제의 등장으로 약으로 극복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러 2000년 <가을동화> 이후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더 이상 백혈병이 불치병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존의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심어준 백혈병 및 골수기증에 관한 잘못된 인식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고 이로 인한 피해는 지금도 분명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너는 내운명>이 백혈병과 골수기증에 관한 잘못된 내용을 방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백혈병 및 골수기증의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의학적 자문을 통해 백혈병과 골수기증에 관한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기왕에 KBS 일일연속극 <너는 내운명>이 ‘백혈병과 골수기증’이라는 그리고 MBC 주말연속극 <내인생황의 황금기>가 ’만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예민한 소재를 선택한 이상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를 보고 있을 수많은 백혈병 환자와 그 가족들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내용으로, 더 나아가서는 백혈병과 골수기증에 관한 잘못된 상식과 편견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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