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도 사랑을 배울 수 있을까?
인공지능도 사랑을 배울 수 있을까?
  • 하주원
  • 승인 2018.05.21 0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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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그맘’ … 감독 선혜윤, 2017년, 한국

[헬스코리아뉴스] 지나가다 우연히 본 ‘보그맘’의 병맛 억지개그는 1분 만에 날 사로잡았다. 나는 ‘무한도전’이나 ‘런닝맨’ 등의 버라이어티 같은 대본 없음을 지향하는 그런 프로그램은 못 보겠다.

웃기려는 의도가 없는 척 놀다가 자연스레 나오는 말들이 별로 재미가 없다. 그 대신 ‘SNL’, ‘코미디 빅리그’나 ‘개그콘서트’처럼 대놓고 웃기려는 쪽이 좋다. 그래서 보그맘의 현실을 비튼 유치한 개그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런 장르의 현실적 SF 드라마는 사실 우리나라 공중파에 거의 없다. 타임슬랩 같은 것은 나는 SF보다는 판타지와 비슷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나는 2017년 드라마를 2개 봤는데 정말 재미있게 본 드라마이지만 주변에 그 누구도 보지 않았으며 환자분들도 어떻게 그렇게 유치한 것을 좋아할 수 있냐고 할 정도니(주변에서는 내가 미국 드라마나 ‘비밀의 숲’을 좋아할 것 같다고 하시던데 전혀 그렇지 않다) 시청률이 낮았던 것 같다. 지금 찾아보니 공중파 치고 낮은 4.6%이다. 드라마는 보고 난 뒤 누군가와 얘기하는 맛이 있는 건데 이 드라마는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개발자의 의도와 달리 인공지능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면서 발열반응으로 인해 회로에 이상이 생겨, 보그맘의 오류가 증가하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개발자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개발자 최고봉 박사는 죽은 아내의 형상대로 보그맘을 만들었던 시작부터가 어떻게 보면 개발자의 바램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딥 러닝을 통해서 보그맘이 사랑을 배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사랑은 이성을 거스르고, 꼭 그것이 이 드라마에서처럼 온도 때문은 아니지만,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를 일으킨다. 망가진 회로로 인해 일부 영역, 즉 연애 초기에는 도파민이 관여하는 보상회로, 또는 엄마가 힘들어도 젖을 물리게 되는 세로토닌 시스템 등의 손상을 알면서도 또는 모르면서도 감수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딥 러닝이 가능한 인공지능은 개발 초기, 즉 탄생 시에 예측하지 못한 단점 또는 장점을 가지게 될 텐데 그 것이 치명적인 오류이냐 아니냐는 물론 인간이 판단할 일이지만 예측한 기능을 뛰어넘는 기능이라고 해서 그것이 폐기(죽음)를 정당화 시키지 못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제 실험동물의 인권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오는데 30년 후에는 인공지능의 인권에 대해서 논하게 될 것이다.

▲ 개발자의 의도와 달리 인공지능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면서 발열반응으로 인해 회로에 이상이 생겨, 보그맘의 오류가 증가하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인간다움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지만 질투와 그로인한 계획적인 악의(ill-intentioned) 역시 인간다움이다.

버킹검 유치원은 과장된 것 같지만 현실의 학부모 사회에서도 그런 권력이 존재한다. 순수한 1:1의 관계가 아니라 2:2의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사실 피곤해지기 쉬운 것이 학부모 관계다.

내 자식이 좋아하는 친구라고 내가 그 집 엄마를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학부모 사회에서 권력의 힘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워킹맘으로서 나의 열등감과 애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참 어렵다.

엘레강스 맘들의 행태, 땡철이 삼촌의 대사, 보그맘의 순종적인 캐릭터 등이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는 의견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최고봉 박사는 아내가 죽은 후 자신의 일도 하지 않고 육아를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자신의 판타지를 실현하려고 만든 것이 보그맘이다.

보그맘의 캐릭터가 모든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지적인 매력과 육체적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상적 여자인 것은 사실이다. 여자가 근육질의 페미니스트 매너남 사이보그를 만든다고 해서 젠더감수성이 낮은 드라마라고 하겠는가. 내가 만들더라도 원하는 이상형대로 로봇을 만들거다.

박한별에게 미안하지만, 로봇 연기가 이제까지의 어떤 역할보다도 잘 어울렸고 가끔 지난 시절의 사람으로 나올 때는 좀 이상했다. 하지만 그 완벽한 외모 역시 로봇에 어울리는 것 아니었을까. 양동근도 1990년대 초반 ‘형’만큼 어울리는 역할이었다. 정성호, 정상훈, 김준현, 김소연 등의 까메오 연기도 재미있었다.

다만 가장 이해 안되는 캐릭터는 보그맘의 남편에게 분노하고 같이 놀이공원에 가서 위로를 해주는 유치원 선생님이다. 인공지능이어서 다행이지 멱살 잡힐 일 아닌가. 의사나 선생님 등 정기적인 고객을 대하는 직업은 그런 부분에 더욱 철저해야 한다.

처음 찾아온 사람의 무리한 요구는 오히려 판단하기 쉬운 문제다. 나도 가끔은 오래 된 환자분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 그들이 과도한 도움을 청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을 넘어 도움을 주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늘 명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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