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권현 기자] 의료기관 내 갑질과 인권유린 등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간호사를 포함한 상당수 병원 노동자들이 자신의 업무와 무관한 청소부터 병원 주변 풀 뽑기 등을 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조사 결과가 나와 논란이 일 전망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최근 ‘의료기관 내 갑질과 인권유린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 실태조사에 따르면 병원 노동자들의 51.5%가 의료기관인증평가 때 본인의 업무와 관련 없는 청소 및 환경정리, 병원 주변 풀 뽑기, 침대 및 철창 닦기, 주차관리, 담배꽁초 줍기 등의 업무를 강요받았다고 응답했다.
직종별로 살펴보면 간호사가 60.3%, 간호조무사가 47.4%, 의료기사 36.9%, 사무행정이 21.1%였다. 병원 특성별로는 사립대병원이 59%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국립대병원 45.7%, 민간 중소병원이 43.6%로 집계됐다.
병원 인증평가, ‘풀 뽑고 청소’ 군대식 사열을 방불케 해
경기도 대형병원 간호사 A씨는 “병원 인증평가 준비를 위해 근무가 끝난 뒤 처치실 천장을 닦는다”며 “업무 중인 간호사들은 자기 일도 바쁜데 업무 이외의 일을 하다 보면 안 그래도 오버타임 하는 마당에 더 늦게 퇴근하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종합병원 간호사 B씨는 “병원 인증평가 때는 근무가 아닌 날에 나와 병동 벽, 바닥, 천장 등을 청소시킨다”며 “사복을 입혀 평가인증단이 오는지도 감시하게 한다”고 말했다.
서울 종합병원 간호사 C씨는 “병원은 임신 7개월 임산부에게 창틀에 올라가 창문을 닦게 하고 쪼그려 앉아 락스 섞인 소독제로 이동 침대를 닦게 했다”며 “일하는 도중 다친 직원에 대한 산재 처리도 해주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부당한 업무 지시는 병원 밖 사업장에서 일하는 산업간호사들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소속 산업간호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 D씨는 “입사 2년 후 임신을 하자 사측으로부터 권고사직을 받았다”며 “이를 거부하자 사측은 간호사 복장을 한 채 회사 앞에서 하루 2시간씩 잡초 제거를 지시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임신 초기에 쭈그려 앉아 잡초를 뽑으면서 두 번이나 아이를 잃을 상황에 처해 퇴사했다”며 “제 발로 걸어 나왔더니 실업급여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나영명 정책국장은 “병원 갑질의 근본적인 원인은 병원이 수익성을 추구하는 데서 온다”며 “정부는 인력을 충원하는 문제와 노동강도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정재수 정책기획실장은 “보건의료노조는 앞으로 태움, 공짜노동, 속임인증, 비정규직 등을 완전히 근절하기 위한 ‘4OUT 운동’을 통해 시간외수당의 법적 근거, 출퇴근시간 기록 의무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