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팬더가 자신의 재능을 완전히 새롭게 발견하는 1탄보다, 이미 자신이 용의 전사라는 것을 깨달은 상태에서 다시 한 번 그 영역을 확장하는 3탄이 더 재미있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갔다. 그래서인지 그냥 괜찮았다.
팬더가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고, 같은 종의 동물인 팬더가 있는 마을에서 활약을 펼치는 이야기다. 동물들의 액션은 웬만한 액션영화보다 인상적이었고, 팬더들은 다른 동물에 비해 특별히 귀엽긴 하다.
다만 꼭 팬더의 저변을 저승까지 확대했어야 했나 싶다. 미국에서 온 악당 같은 게 차라리 낫겠다. 게다가 나중에 좀 뜬금없는 부분도 있었다. 누구나 예상 가능하지만 그래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이 한 순간의 깨달음으로 인해서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현재의 자신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은 현실적으로는 훨씬 더 힘겨운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팬더니까 그냥 두자.
어쩌면 가족끼리 함께 볼만한 괜찮은 영화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겨울왕국’보다 재미있게 봤으니까.
서로 사랑하지만 늘 사랑하지는 않는 관계. 즉 미워하고 다투고 화해해야 진짜 부모-자녀 간의 관계가 완성된다는 면에서 길러준 아빠가 낳은 아빠에게 했던 대사도 참 기억에 남는다.
나도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다투어서 문제가 아니라 다투는 걸 두려워해서 의사소통을 피하는 것이 어쩌면 더 문제일 수도 있다.
“아들이 당신을 미워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진짜 부모가 되신 것을 축하드려요.”
“나는 너를 나처럼 만드려는게 아니야. 너를 너로 만드려는 거지.”
스스로를 한 가지 역할로 규정짓거나, 내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역할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기려는 시도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원래 이 곳에서는 이런 역할을 하다가 저 곳에서는 저런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정과 직장, 친구들, 종교 여러 집단에서 반드시 같은 모습일 필요도 없다. 나에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은 구분해야 하겠지만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고 해서 혼란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역할에 있어서는 우선순위가 늘 달라지는 것이 정상이다. 팬더처럼 용의 전사일 때도 있고, 국수집 주방보조일 때도 있다. 아이가 나랑 놀자고 할 때는 꿋꿋이 출근하다가도,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하던 일 다 제치고 집에 갈 수도 있다.
내가 다양한 위치에서 여러 역할을 할 때 스스로 칭찬해주면 되지 혼란을 느끼지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랬을 때 나의 자존감도 높아지고 너를 나로 만드는 양육이나 교육이 아니라 너를 너로 만들 수 있는 기다림의 지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