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가정과 공공의료
다문화 가정과 공공의료
  • 신현재
  • admin@hkn24.com
  • 승인 2017.09.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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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뉴스] ‘똑똑똑’

누군가 진료실 문을 두드린다.

“어서 오세요!”

갓난아기를 힘겹게 안은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다. 외래진료 접수 명단에 대기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예방접종 예진을 위해 나를 찾은 것이 틀림없다. 어머니를 쳐다볼 틈도 없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흰 가운을 입은 의사를 쳐다보는 귀여운 갓난아기의 얼굴에 넋이 나가버린다.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어머니가 들고 온 문진표 종이를 받아든다. 모두 ‘아니오’로 체크되어 있어 일단 안심이다.

“철수(가명)가 오늘 아픈 곳은 없나요?”

문진표 1번 항목은 ‘오늘 아픈 곳은 없습니까?’ 이고, ‘아니오’로 체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질문은 의사의 진찰보다는 안부를 묻기 위한 질문에 가깝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아무런 대답이 없다.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 한국어를 못하시는구나.’

당황스럽지만 조심스레 영어를 시도해본다.

“Can you speak English?"

“...”

어머니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뻐끔거리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소리가 들린다.

‘오, 이런...’

▲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다문화가정 인구 추정치는 74만명이며, 2050년에는 216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다문화가정이 많아지며 다문화가정에서도 다양한 의료 수요를 갖는다. 공중보건의사의 근무환경에서 다문화가정을 접하는 건 예방접종이 대부분이다. <사진 : 포토애플=메디포토>

다문화 가정 70만명의 시대

공중보건의사가 되어 이곳에서 근무한지 1주일 만에 있던 일이다. 공중보건의사가 되면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근황을 주고받으며 넉넉한 마음으로 일하게 될지는 알았지만, 이런 상황은 예상을 못했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진땀을 흘려가며 주로 바디랭귀지를 활용하며 의사소통을 했다. 특히 열이 있는지, 알러지가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 어려웠다.

다행히 철수에게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그렇게 예진과 접종을 끝마치며 한숨을 돌리는데 의문이 생겼다. 한글로 된 예방접종 문진표에 왜 어머니는 모두 ‘아니오’라고 체크했을까. 알고 보니 문진표를 이해하고 체크한 게 아니었다. ‘아니오’로 체크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 그렇게 한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다문화가정 인구 추정치는 74만명이며, 2050년에는 216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다문화가정이 많아지며 다문화가정에서도 다양한 의료 수요를 갖는다. 공중보건의사의 근무환경에서 다문화가정을 접하는 건 예방접종이 대부분이다.

이에 맞추어 2012년 공중보건의사협의회에서는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다문화가정 어린이가 안전한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9개국 언어로 번역한 다국어 문진표를 만들었다.

▲ 다국어 문진표 중 일부

해당 언어는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일본어, 타갈로그어(필리핀), 크메르어(캄보디아), 태국어, 몽골어, 러시아어이다. 또한 예방접종 정보를 얻는 데 도움이 되도록 다국어 예방접종 안내책자도 발간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근무하는 보건지소에는 다국어 문진표가 비치되어 있지 않았었다. 이에 타 지역에서 근무하는 동료 공중보건의 십수명에게 물어보았지만, 해당 자료를 활용하고 있는 보건지소는 한 두 곳 정도였다.

내가 근무하는 지자체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4% 가량이 외국인주민이며 매년 빠르게 그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보건지소를 찾는 외국인주민은 체감 상 훨씬 많다. 외국인주민 중 이주여성이 많고,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보건지소를 찾도록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통계에 따르면 위의 예방접종 다국어 문진표에 해당하는 국가들 이외에도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네팔 등에서 온 외국인이 12% 가량 차지한다.

이들이 영어 사용에 어려움이 있다면, 현재 쓰이고 있는 다국어 문진표로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국어 문진표를 더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여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모두가 행복한 다문화사회를 위한 첫걸음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국은 다문화사회인지 묻는 질문에 66%가 그렇다고 대답하였고, 동시에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한 질문에서는 그 중 41.3%가 사회적 차별을 느낀다고 대답하였다.

▲ 공중보건의사 신현재

또한 지역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의 38%가 언어적 장벽에서 비롯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우리나라가 다문화사회를 지향한다면, 예방접종과 같은 공공의료에서 그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국어 문진표는 인터넷에서 간단한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성남시 중원구 보건소의 자료실 [바로가기]을 방문하면 된다.

내달부터 영유아 독감 예방접종이 시작된다. 영유아는 성인에 비해 잔병치레가 많고 알러지 증상이 위험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꼼꼼한 예진이 필요하다. 우리 공중보건의사들에게 또한 공공의료 종사자들에게 다문화 가정을 향한 따듯하면서도 간단한 변화가 필요해보인다. <공중보건의사 신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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