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3년전 6월 어느날, 자궁경부암 환자와 남편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진료실을 방문했다.
방문 수 주전, 자궁경부암 검진 세포검사상 이상소견으로 진료실에 오신 환자로 한창 젊은 나이였다. 더구나 미국 이민을 가려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라, 추가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자궁경부 원추절제술(조직검사) 및 결과 확인 스케줄에 무척 난감해 하고 있었다.
추가 검사 결과 자궁경부암으로 확인돼 내가 알고 있는 교수님이 계시는 3차병원으로 전원하였다. 교수님에게 잘 부탁드린다고 전화도 한 통 넣었다.(김영란법 이전 이야기다)
이후 환자는 그곳에서 추가 암수술을 끝낸 후 조직검사상 더이상의 추가치료가 필요없는 상태라서 퇴원 했고 다음주 미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진료실에 방문한 것이다.
무엇이 고맙냐고? 당연한 일인데? 환자분은 ‘선생님 덕분에 빨리빨리 진행하고 좋은 교수님을 만나게 해 주셔서 수술도 잘 되고 빨리 끝나게 되었습니다. 결과도 좋구요. 감사합니다.’ 라는 내용의 감사의 인사를 주었다.
사실 내가 특별하게 한 것은 없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첫째, 환자에게 왜 검사가 반드시 필요한지 빡세게 설명하기. 둘째, 환자가 갈등할 때 화내면서까지 검사 해야된다고 윽박(?)지르기. 셋째, 검사를 빨리 시행한 후 검사결과 보기 위해 병리검사실에 독촉 및 부탁전화 계속 해대기. 넷째, 결과 확인 후 내가 아는 교수님께 가라고 마구 설득해서 전화통화 한 후 바로 그분 외래로 밀어 넣기. 이 네가지 뿐이다.
나만 이런걸까? 다른 의사들은 이러지 않을까? 이런 나를 보고 어떤 이들은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런다. 조금 더 경험이 쌓이면서 환자와 보호자들로부터 험한 꼴 몇번 당하면 다시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그러지 아니할 것’이라고들 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사실 위의 상황을 잘 보면, 험한 꼴 당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상소견의 결과를 보이는 검사는 검진용 검사이므로, 추가적인 진단적 조직검사를 시행하였을때, 실제 조직검사의 결과가 별거 아닌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난 완전히 돌팔이 되는거다. 환자 겁만 주는 돌팔이 의사. 환자의 비난이 어마어마하다.
병리검사실에 독촉전화 많이 하면 할 수록 그곳에서는 나는 또라이 의사가 된다. 자신들을 피곤하게 하는 의사. 어차피 조만간 결과 나올텐데 그 사이를 못참고 전화해대는 또라이 의사, 성질급한 의사.
환자가 원하는 병원으로 보내면 되는데, 내가 추천한 병원으로 환자를 보냈다. 만일 그 병원에서 좋지않은 일이라도 생긴다면 난 완전히 죽일 놈 되는 거다. 그딴 곳을 추천해 주었다는 비난 왕창.
다행스럽게도 모든 상황이 별 탈없이 진행되어 내가 인사를 받게 된 것이다. 사실 이 모든 상황이 잘 끝난 것에 내가 감사해야 되는 것이다.
환자들이 볼때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일까? 좀 불친절한거 같아도, 때론 퉁명스럽게 대하는거 같아도 환자에 대한 인간적 애정이 있는, 그래서 듣기싫은 잔소리도 좀 하는 의사가 좋을까? 아니면 친절하고 다정하면서 이해심 많아 보이지만, 환자와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방어적인 행동을 하는 의사가 좋을까?
물론 환자에 대한 애정이 넘치면서 친절하고 다정하면서 이해심 많고 환자를 위해 저돌적으로 나서 주는 의사가 최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건 이상에 가깝다.
솔직히 위의 상황 같은 경험에서 한 번이라도 욕을 바가지로 먹고 나면 다신 그런 행동을 반복하기 싫어진다.
의사도 인간이고 의학도 인간이 하는 일이라 잘하려고 해도 문제가 생기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 경우를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의사와 환자 사이에 담이 생기게 되며 크게 보면 결국 환자에게, 우리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
환자와 남편이 내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가셨지만 난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마음속으로 한다. 무대뽀처럼 불친절했던 이 의사를 믿어준 것에 감사한다. [공건영 산부인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