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2016년을 마치는 순간에 보던 영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러나 같이 보신 분의 혹평, 일단 음악이나 스토리가 ‘물랑루즈’ ‘드림걸즈’ ‘레미제라블’ 보다 훨씬 못하다는 말에는 일단 공감. 사람들이 하도 인생영화라고 해서 너무 기대한 것 같기도 하다.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고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역시 후반 10분에 눈물이 마구 흐르는 것은 사실. 우리가 어쩌지 못하고 흘려보낸 결정적인 순간에 대해, 구체적인 기억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일단 뭉클하고 벅차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이를 하나 더 먹는 입장에서 ‘그래도 아직 젊구나’ 라는 엉뚱한 위로를 받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자기표현의 욕구도 있겠지만 철저하게 관객의 마음속에 파고 들어와 그 입장에서 영화를 만든 느낌. 나는 ‘중경삼림’이 생각났다.
혹시 나 같은 사람이 있나 싶어 두 가지를 함께 검색해보니 그런 사람은 안 계시나보다.
꿈은 이뤘지만 그것을 함께 하지 못했고, 난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말이 메아리처럼 남은. 영화 속의 이루지 못한 겨울도 아름다웠다.
현실은 어떤가. 사랑도 못 이루고 각자의 꿈도 못 이루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나도 그랬었다. 사실 그때의 꿈은 하나도 이루지 못했고 완전히 타협한 채 살았고 지난 연인을 우연히 마주치는 일 같은 것은 없다. 구글링을 엄청 해보면 몰라도.
결혼하고 각자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소망과 사랑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 노을의 색을 뒤섞어 버리면 별것 아닌 평범한 색깔이 되는 것처럼. 그런데 반짝반짝 빛나지 않는다고 그게 절망인가. 아니다.
추억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 그리움의 출발은 언제나 아름다울지언정 크기와 지속성이 커지면 불쾌한 감정이다. 간지럼처럼. 비록 후회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곁에 있는 사람과도 지난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집사람은 아름다웠던 여친이 되지 못하고 지금 연락하는 친구와도 고등학교 시절처럼 놀지는 못한다. 그것이 삶의 공평한 슬픔이다.
그때 그랬더라면 그, 그녀, 그리고 그와 그녀는 모두 달라졌겠지. 바보 같은 고집, 진심이 아닌 말, 너무 오래된 원망, 부치지 못한 편지.
재능은 없고 열정만 있던 - 열정이라고 남들보다 넘치지도 못했던 - 시간이 스르륵 떠올랐다. 20여 년 전부터 바로 어제까지가 문득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상영관의 문제로 음악 사이의 여백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때로는 그 여백이 더 아름다운 것인데.
음악은 너무 좋아서 계속 듣는 중이다. [연세숲정신건강의학과 하주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