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어딘가 계실 나의 아버지께
우주 어딘가 계실 나의 아버지께
인터스텔라 (2014년 作 영화)
  • 하주원 원장
  • 승인 2016.11.21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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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뉴스] 보고싶은 우리 아빠.

변명 같지만, 자식들은 원래 부모님 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나봅니다.

게다가 저는 딸이어서 그런지 엄마를 이해하는 것보다 아빠를 이해하는데 더욱 더 오래 걸렸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자주 부딪혔던 10대 시절에는 아빠가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고민을 한 적도 있었고,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며 고민을 멈춘 적도 있었습니다.

아빠는 진짜 좋은 사람이었고 ‘아버지’라는 주어진 의무를 다하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했는데도 말예요.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응원하는 아빠의 사랑은 사춘기의 나에게 잘 다가오지 않았고 100번의 사랑에도 1번의 말싸움으로 토라져버리고 서운해 하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때는 다 컸다고 생각했죠)

요즘 정신없이 바쁘고 잠잘 시간이 부족한데도 대학생 때부터 너무 좋아하던 감독의 영화였기에 자정이 다 되어 시작하는 ‘인터스텔라’를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어릴 적 외에, 아빠하고 영화 한 번 보러 간 적 있었나 돌아보게 되네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빠입니다. 그리고 딸입니다.

주인공은 아빠로서의 역할과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한 임무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그 부분을 보니 여러가지 역할로 갈등을 겪었을 아빠 생각이 났어요.

아빠 역할도 잘 하고 싶었을테지만, 그것만 잘 해서는 안되는 무거운 짐이 많았던 것을.

그 때는 참 그 짐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투정을 부렸던 것 같습니다.

아빠는 저와 소통하기 위해서 많은 신호를 보냈는데 제가 못 알아차렸다는 생각도 들어요.

내가 좋아하는 카레와 아빠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퓨전한 요리를 만들어주셨을 때, 결혼식 때 신부 입장을 하면서 천천히 걸었을 때, 내가 아이를 가졌다고 하니 병상에서 엄지를 치켜 세워줬을 때, 그런 것이 단지 그 순간만의 사랑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의 표현이었음을.

영화 속에서 차원을 초월한 공간이 반드시 어딘가에 있는 공간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공간이 블랙홀 속에 있거나, 있다 한들 인간이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 아빠가 살아 계실 때보다 더 자주 떠올리고,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됩니다. 내가 다섯 살 또는 열두 살 때의 아빠를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우리가 제한된 시간과 장소 안에서 언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사랑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언어를 넘어선 방법으로 전달할 수 있는 관념적인 공간, 우리의 마음이 자유롭게 통하는 공간을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자녀의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부모의 시간은 양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던 거죠.

미래의 사랑까지 예정되어있는 것이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마음의 속성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지금 아빠와 수다를 떨거나 당장 달려가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빠가 어렸을 적부터 나에게 심어준 가치를 실천하고 또 몸과 마음에 배인 채로 살고 있어요.

아 이런 말이 도대체 위로가 되나요?

어쩌면 아빠가 살아 계실 때보다 더 자주 떠올리고,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바보같은 시간의 속성이죠. 뒤늦은 깨달음…

이것을 되돌릴 수 있고, 또 내가 다섯 살 또는 열두 살 때의 아빠를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67세의 내가 갓 서울에 올라와 힘든 21세의 아빠에게 지혜로운 애정을 줄 수 있다면!

‘존재’한다는 것은 반드시 형상을 가지고 내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 안 어디서든 내 기억 속에, 사람들의 관념 속에, 하나의 교훈으로 자리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아빠는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어요.

혹시나 거대한 음모에 속았다 할지라도,

별다른 수확 없이 열심히만 살았던 삶일지라도,

파도치던 첫 번째 행성처럼 긴 시간이 결국 한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 아빠와 다른 모든 아버지들은 자녀들의 인생에 교훈으로 빛나고 있을 겁니다.

세상에 좋은 아빠들만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닌데, 저에게 좋은 아빠로 남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멀리서 오는 신호를 놓치지 않고 힘내서 살아가겠습니다.

<연세숲정신건강의학과 하주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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