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먹고 먹히기’ … 수가인상도 기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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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누가 누구를 치료하는가 - ② ‘진료영역 침범’ 악순환, 보이지 않는 해결책
  • 이우진 기자
  • admin@hkn24.com
  • 승인 2016.03.01 0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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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1년간의 인턴을 거친다. 이후 4년간 자신이 전공할 세부 진료 분야를 새롭게 공부한 사람들을 우리는 ‘전문의’라고 부른다. 이 사람들은 오랜 교육을 통해 해당분야의 ‘프로페셔널’이 된다.

하지만 최근 의료계는 극심한 진료과 붕괴를 겪고 있다. 자신의 전문 치료분야가 아닌 다른 질환의 환자들을 빼앗고 빼앗기며 각박한 ‘환자 모으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선 의료현장에서는 이 경쟁체계의 원인 상당수가 경제적 이유라고 말한다. 의사를 고용하기 어려운 경우, 혹은 경영난으로 타과 환자들을 모을 수밖에 없는 경우 등이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무너져가는 진료과의 경계와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등을 짚어봤다.

① 무너지는 진료과 경계 … 전공은 하나인데 진료과는 서너개(?)
② ‘진료영역 침범’ 악순환, 보이지 않는 해결책

# 진료영역 두고 직역 간 ‘등돌리기’까지 = 진료영역 붕괴의 대표적인 사례는 양악 수술과 피부미용 논란으로 촉발된 의사-치과의사 간 논쟁이다.

우리 몸의 위턱(상악)과 아래턱(하악), 즉 양악은 균형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걱턱이나 무턱, 안면비대칭 등으로 언어사용이나 섭식에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상악과 하악의 뼈를 자른 다음 정상적으로 교합되도록 하는 양악수술이 필요하다.

문제는 성형외과와 구강악안면외과가 ‘양악수술은 우리의 영역’임을 주장하며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국내에서의 이 수술을 처음 시작한 것은 치과 쪽이었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의 민병일 교수가 1950년대 처음 하악수술을 시작한 이후 1980년 서울치대 수술진에 의해 본격적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구강외과에서는 기존부터 시행해 왔던 전문성을, 성형외과는 기능과 함께 심미적 측면을 부각시키며 갑론을박을 벌였다.

▲ 한 의사가 양악 수술 전 환자의 얼굴을 보고 있다. 최근에는 잠잠해졌지만 과거 양악 수술을 두고 성형외과와 구강악안면외과는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위 사진은 특정 기사와 무관함>

이 때문에 각 학회까지 나서 서로를 비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구강외과학회는 ‘양악수술이 비급여로 돈이 되기 때문에 성형외과가 눈독을 들인다’고 비판했고 성형외과학회는 ‘구강외과도 교정과를 함께 전공한 경우가 아니라면 협진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맞섰다.

특히 일부 성형외과 의사들은 치과의사의 안면윤곽수술은 문제가 있다는 내용을 유포하기도 해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직접 해명에 나서는 등 큰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양악 수술 외에도 치과의사의 피부 치료행위도 의사와 치과의사의 갈등을 부른 원인 중 하나였다. 서울지방법원은 지난 2013년 환자에게 미용목적의 피부레이저를 시술한 치과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치과의사의 치료가 시술 특성 및 전문성 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와 전국의사총연합 등은 성명을 통해 “법원이 비상식적이며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렸다”며 “의사와 치과의사의 업무영역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특히 당시 노환규 의협 회장은 SNS를 통해 “(이번 판결은)치과의사가 뇌수술을 할 수도 있다는 판결이 아니겠느냐”고 법원을 질타하는 등 의료계와 치의계가 한동안 큰 논란을 겪기도 했다.

이 밖에도 여성 방광질환(산부인과-비뇨기과), 소아 코감기 환자(소아청소년과-이비인후과) 등 직역과 진료과 간 진료영역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 ‘진료영역 침범’이 남긴 것은 = 비단 앞의 사례를 들지 않는다고 해도 의료계 내 진료영역의 침범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다다랐다. 의사들은 ‘전문의’라는 이름표를 떼고 일반의원을 열어 미용성형 환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산부인과는 2005년 1907개소에서 2014년 말 1366곳으로 줄어들었다. 10년새 약 29%의 산부인과 의원이 문을 닫은 것이다. 전문의의 63%가 개원을 선택하는 비뇨기과의 경우에도 같은 기간 905곳에서 961곳으로 불과 6% 상승하는 데 그쳤다.

반면 전문진료 영역을 표시하지 않는 소위 ‘일반의원’은 10년새 4102곳에서 5333곳으로 늘었다. 산부인과가 29% 줄어든 기간 동안 일반의원은 29% 증가한 것이다.

일반의의 상당수가 피부미용이나 쁘띠성형 등 비급여 위주의 의료기관을 개원한다는 의료계의 불문율을 대입하면 산부인과의원들은 경영난에 돈 되는 진료로 ‘환승’했을 가능성이 높다. 자연히 이들은 피부과 등의 영역을 침범할 수도 있다.

이같은 진료영역 침범은 결과적으로 의료전달체계마저 무너트리고 있다. 비급여 중심의 진료과로 의사들이 이동하면 자연스레 기존 산부인과·외과·비뇨기과 등을 이용하던 환자들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훨씬 큰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환자들은 1차 진료처를 ‘방문’하기만 한 채 3차 의료기관으로 직행할 수밖에 없다.

특히 산간·도서·농촌 등 의료취약지 환자들은 치료를 위해 인근 대도시나 서울까지 와야 하므로 지역 의료계에는 잠재적 환자 감소를, 환자는 이동에 따른 금전적 피해와 시간 낭비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 의료계의 모든 문제는 ‘수가’ … 하지만(?) = 의료계 관계자들은 해마다 더욱 심각해져 가는 진료영역 침범과 이로 인한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수가 인상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비뇨기과학회 관계자는 “전문의가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를 전달해주기 위해서는 수가 인상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정부가 4대 중증질환 같은 ‘눈에 보이는 의료’만 보장해주고 정작 국민들에게 필요한 기초의료는 저수가를 강요하고 있지 않느냐. 전문의들이 소신진료·필수진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C교수는 “과거(2009년) 흉부외과가 전공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 정부가 수가를 100% 인상하고 전공의 월급까지 지원해준 후 단기간이었지만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율이 상승했다”며 “지금 같은 저수가 상황에서 필수의료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가 인상은 기본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 중구의 개원의 D씨는 “우리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한 만큼만 정부가 우리에게 지불해 달라는 것”이라며 “환자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개원의 아니냐.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게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인 줄 알았다면 개원조차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 건강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회의 장면. 건정심은 치료행위의 건강보험 등재(수가 지급)를 결정하는 사실상 보건정책의 최고 의결기구 중 하나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계의 수가 인상 의견에는 일정부분 동조하면서도 다른 시각을 보여왔다. 급여권에서의 낮은 수익률을 비급여로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수가가 필수의료의 붕괴와 진료과 간 불신을 조장한다는 주장에는 이렇다할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정부는 최근까지 원가보존율이 높은 치료행위의 수가를 내려 보존율이 낮은 처치행위에 나눠주는 ‘2차 상대가치점수 개편’을 추진해 이같은 문제를 개선해보려 했지만 이마저 1월 말 갑작스럽게 중단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한 관계자는 “그동안 진행되던 2차 개편이 연기된 이유는 학회 간 입장도 있지만 여러 단체와의 파이(수익 배분) 조정 문제가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며 “복지부에서는 수가를 인상하는 게 조심스럽다. 현재 진행중인 개편도 어려운데 더 많은 수가를 지불하면서까지 진료영역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이 관계자는 “진료과별 상황이 어렵다는 걸 정부에서 모를 리가 있겠느냐. 다만 산적한 현안이 너무 많아 지금의 과제를 먼저 풀어야 논의라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그는 이어 “더욱이 수가는 복지부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료 공급자·소비자·시민사회단체 등이 모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의 의결과정이 필요해 복지부 입장에서도 이와 관련한 주장만으로 수가 인상을 추진하면 반발도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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