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사회적으로 질시를 받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그 결과 의사들은 가장 착한 집단이면서도 가장 사회화가 덜 된 집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의사회가 우리의 이권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한이비인후과 개원의사회는 2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7회 학술대회 및 정기총회에서 향후 역점 사업으로 소아청소년 난청 환자를 줄이기 위한 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강과 함께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을 1차의료 담당자가 아닌 ‘전문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의사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난청에 대한 정부 차원의 검진 프로그램이 없다. 학교 검진은 초등 1·4학년,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학시에만 이뤄진다. 이마저도 외이도나 고막의 이상 여부를 판단하는 고막 검사가 없고 1000헤르츠(Hz)만을 사용한 청력검사만 시행되기 때문에 생활소음으로 인한 소음성 난청 여부는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2010년 발표한 자료에서도 질본이 조사한 초중고 학생의 난청 유병율은 5.4%인데 반해 학교 검진에서의 난청 유병률은 0.47%로 집계됐다. 대다수의 청소년이 하루 2시간 이상 80~100db 이상의 소음에 노출돼 있어 소음성 난청 유병률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정확하지 못한 검진이 청소년의 건강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회와 이비인후과학회, 대한이과학회, 대한청각학회는 의사들의 재능기부를 통한 소아청소년 소음성 난청 줄이기 시범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먼저 의사회와 학회는 이비인후과 중 정확한 검진이 가능한 청력검사실을 갖춘 500여개의 병·의원의 의사들에게 검진을 의뢰한다. 해당 검진은 의료기관 내 의사의 재능기부로 진행된다.
지난 19일 복지부와 사업 논의를 시작했으며 향후 해당 사업이 정부 지원 형태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사업 결과가 좋으면 결과에 따라 복지부(생애전주기 복지정책 담당)와 교육부(학교 검진 담당) 중 하나를 선택해 정부 지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의사회와 학회는 밝혔다.
홍일희 이비인후과 의사회장은 “복지부와의 협의를 통해 제도로 시행되는 것이 제일이지만 사업 진행이 늦어지면 학회가 자체적으로 시행할 수도 있다”며 “코호트 연구와 근거 확충 등에 필요한 자금을 학회와 개원의사회 예산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환중 이비인후과학회장은 “10대의 소음성 난청의 경우 30대의 청력이 60대까지 떨어진다. 더욱이 소음성 난청은 한 번 시작되면 따돌림까지 이어지기도 한다”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이번 사업은) 국가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이번 사업을 통해 미래 의료비용의 낭비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의사회와 학회는 이비인후과 질환에 관심있는 사람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이어폰 사용 자제’ 등 대국민 캠페인도 펼칠 계획이다.
의사회와 학회는 이같은 계획이 이비인후과의 위상을 스스로 되찾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비인후과의 경우 전문의 취득 후 개원률은 약 79%에 이른다. 피부과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하지만 개원의의 대부분은 감기 등 1차 의료만을 담당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즉 이비인후과의 고유영역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국민들에게 ‘귀 전문가’라는 이미지를 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홍 회장은 “이비인후과는 옛날엔 전문가였지만, 일선 의료로 들어가면서 감기 같은 1차의료를 보는 의사가 됐다”며 “(사업을 시행하면)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정체성을 찾고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을 통해 이비인후과 전문의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