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무슨 동네 개이름이야? 어디 얘기할 데가 있어야 얘기하지.”
젊은이의 푸념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며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는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라고 묻는다. 새누리당 소통어플리케이션 홍보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방송인 장수원의 ‘로봇연기’를 패러디 한 것이다.
경상남도 무상급식 정책을 둘러싼 논쟁에 두 사내는 “벽보고 얘기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대안을 갖고 오라’고 언성을 높인 홍준표 경남지사와 딱 부러진 논리를 못 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회동은 입장 차만 확인했다.
모두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이 극복할 주요 과제 역시 ‘소통’으로 꼽힌다. 최근 3자회동 개최로 소통 행보를 이어가는 듯했으나, 단 하루 만에 경제정책 실패 여부를 두고 야당과 공방을 벌였다.
소통 이슈는 기업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일동제약과 녹십자간 경영권 분쟁에서 보듯 양자간 갈등은 소통채널마저도 없을 만큼 극단으로 치달았다. 20일 열린 주총에서 일동제약이 무난히 경영권을 방어함으로써 양자간 분쟁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른다.
이를 의식한 듯 일동제약 윤웅섭 사장은 이날 주총에서 “녹십자와의 상생과 신뢰를 위해 많은 대화를 하겠다”며 화해무드 조성에 나섰으나, 말처럼 될지는 미지수다. 녹십자는 여전히 “2대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시인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소통을 시작하는 첫 단계는 ‘명명’(命名)이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소통한다’는 의미다. 김무성 대표가 홍보 동영상 말미에 “이름이 뭐고?”라고 묻는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일동제약과 녹십자는 한 테이블에 앉아 얼굴을 맞대야 한다. 대화하다 답답해서 가슴을 칠 일도,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 그래도 자꾸 만나서 대화하면 내 주장의 오류도, 상대의 일리도 어느 순간 보이게 된다.
‘소통인 듯 소통 아닌 소통 같은’ 흉내 내기로는 부족하다. 흉금을 터놓는 소통이 절실한 때다. 꽃에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벽보고 얘기하는 느낌”은 들지 않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