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쉬려고 했어요.”
1979년부터 35년간 서울대병원 소아외과를 지켜온 박귀원 교수는 서울대 교수 정년이 다가오자 휴식을 계획했다. 미국에 있는 동생 집에 머무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박 교수는 서울대 교수 정년식 다음달인 지난달 1일, 다시 중앙대학교병원으로 출근했다.
“중앙대병원이 큰 병원임에도 소아외과 전담 의사가 없고, 어린이를 수술하는 선생님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김성덕 중앙대병원장의) 설득에 왔어요.”
그랬다. 박 교수가 중앙대병원행을 택한 것은 김성덕 원장이 영입에 공을 들인 결과였다. 김 원장은 지난달 26일 소아외과 탑팀 출범식에서 “박 교수를 뜸들이며 계획적으로 영입했다”고 말할 만큼 박 교수에 대한 믿음이 두터웠다.
김 원장은 박 교수의 서울대 의대 1년 선배이자 서울대병원 전임의 동기다. 박 교수는 소아마취를 담당하던 김 원장과 수술실에서 동고동락했다.
인연이 깊다. 하지만 단지 선배이자 동기의 부탁만으로 인생의 도돌이표 같은 또다른 여정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를 임상현장에 남게 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가 만난 박 교수는 ‘타고난 칼잡이(외과의사)’였다. 중앙대병원 소아외과를 어떻게 이끌어 갈지, 개인적인 계획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애들 잘 고쳐줘야죠”, “아직 모르겠다”고 말을 아꼈지만, 수술과 환자 이야기를 할 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말을 이어갔다.
“사람이 낫는 힘이라는 게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을 때도 있더군요. 한 번은 제주에 사는 아이가 ….”
체력도 좋다. 지금까지 3만건이 넘는 수술을 시행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제가 체격이 좋잖아요. 레지던트 때는 3일 밤을 샌 적도 있어요. 스트레스 받고 신경쓰니까 피곤한 걸 모를 수도 있죠. 또 아직까지 맨 눈으로 수술해요.” 박 교수도 체력이 타고났음을 인정한다.
그를 임상현장에 남게 한 건 바로 ‘자신’일지 모른다. 모두의 만류에도 ‘외과의사’의 길을 고집했던 그다. 할 일이 남아있고, 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기에 그는 현장에 남은 것이다.
사실 박 교수는 임상 현장을 떠나기에 아까운 인물이다. 서울대병원 최초의 여자 외과의사,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전임의 1호 등 국내 의료계에서 그가 이뤄낸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그래서일까. 중앙대병원을 비롯한 의료계 동료 여의사들이 박 교수의 중앙대병원 부임 소식을 가장 기뻐했다. A산부인과 개원의인 김정혜 원장은 박 교수가 정년퇴임 후 쉰다고 계획한 것을 굉장히 안타까워했는데, 박 교수에게 “(아픈 애들을 고쳐주는) 봉사의 의무가 있다”고 설득하며 휴식을 만류하기도 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인기도 좋다. 특히 여성 간호사에게 ‘인기짱’이다.
박 교수가 중앙대병원에 새 둥지를 튼 지 한달하고 보름. 또 어떤 기록을 써낼지 기대감도 없지 않지만, 그 이전에 그가 중앙대병원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아환자들에게는 큰 위로다.
“중앙대병원은 ‘협진’이 되는 게 좋아요. 서울대병원에서는 (진료과목별로) 따로따로 보내야 했는데, 탑팀이라고 협진팀이 있어 논의가 잘 되더라고요. 여기서 후배 한명만 잘 키우면 될 것 같아요.”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