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의료의 현장에서
적정 의료의 현장에서
  • 장규진
  • admin@hkn24.com
  • 승인 2014.03.1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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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규진 과장
“우리 지역에 있는 병원들은 다 엉터리야!” “OO병원 가면 병이 더 생겨서 나온다고!”

서울의 어느 구에 살 때에도, 의대 졸업 후 안산, 군포, 수원 등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10년 이상 살면서도 참 자주 듣는 말입니다.

필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좀 생소한 보건관리대행이라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로서 각 사업장을 방문하여 개인을 대상으로 일차 예방 서비스를 제공하고, 회사를 대상으로 보건관리 자문을 하는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개인 질병에 대한 얘기 외에도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많이 하게 되곤 합니다. 그럴 때 종종 듣는 얘기가 위의 말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국 어디를 가도 거의 동일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 질병관리본부 근무를 하면서 지방 출장을 많이 다녔는데 어느 지역을 가도 똑같은 얘기를 하더군요.

그리고 항상 결론은 동일합니다. 우리 지역에 최고 명문 OO의대 부속병원 혹은 빅5 병원 분원이 와야 한다, 혹은 지역 의과대학이 설립되어야 한다, 우리 지역 병원들은 다 형편없다 등등.

그런 여론(?)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선거인 것 같습니다. 선거철에 정치인들의 공약을 잘 들여다보면, 한국에 재벌병원들이 100~200개쯤 생기고, 의과대학도 41개가 아니라 260여 개 시군구마다 하나씩 생겨야 할 것 같습니다. 여론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내놓은 공약이니, 사실상 지역 민의를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정답일까요? 진짜 한국의 지역 병원들이 그렇게 형편없는 존재들일까요? 다 없애버리고 시군구마다 의대와 부속병원 하나씩, 혹은 재벌병원 분원 하나씩 만들면 해결이 될까요? 나름대로 의학과 보건학을 골고루 공부하고, 임상 현장뿐만 아니라 정책 현장에도 있어 본 의사로서, 그것은 잘못된 여론, 왜곡된 민의, 잘못된 정치 공약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첫째, 병원마다 의사마다 어느 정도 실력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주 희귀한 질환이나 너무 중증질환이 아닌 다음에야 그다지 결정적으로 실력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럴만한 객관적 증거도 별로 없고요.

다만 어떤 질병이든 초기에는 진단과 치료가 잘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보니, 처음 방문하는 지역 병원에서는 만족할만한 결과가 잘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서울의 유명 병원을 갈 때 즈음이면, 이미 결론이 나올 때가 된 셈입니다. 동네 의원에서 안 낫는 감기가 큰 병원에 갈 때 즈음이면, 사실 나을 때가 되어서 낫는 것이지요.

둘째로, 흔히 말하는 빅5 병원 같은 데서 엄청난 대기 시간과 매우 짧은 진료 등 ‘진짜 고생’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지역 병원이 의외로 진료의 질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좋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통상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만, 자기가 보고 싶은 방식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보니, 진짜 현실을 외면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셋째로, 최고 수준의 의사들이 수도 서울의 몇 개 병원에 몰려 있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사들은 숫자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고, 당연히 이런저런 여건이 좋은 몇 개 병원에 집중되어 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모든 환자가 그런 의사들에게 가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환자들은 질병의 중증도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병원들에서 적절하게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기도 하고, 사실 충분합니다. 빅5 병원에 가는 환자들 중 매우 많은 수가 사실 지역 병원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는 연구들이 이미 나와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넷째, 그 모든 이유들을 떠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수 백 개의 재벌병원 분원이나 의대를 설립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막대한 재원을 투입할 수 있는 주체가 아무도 없습니다.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 정부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재벌은 어떨까요? 한국의 재벌병원들이 재단에서 투입하는 막강한 자본력으로 버티고 있지, 자체 수익으로 견디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벌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출혈성 사업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약간(?)의 출혈로 사회공헌 행세를 하는 것은 몇 개 병원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필자가 근무를 하는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도 일반적인 여론은 간결합니다. 자기 집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빅5 같은 병원이 있으면 좋겠으며, 대기 시간 별로 없이 저렴하게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폼 나게 거기에 의대도 하나씩 붙어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룰 수 없는 바램이지요.

평소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2013년 가을부터 안산의 2차급 공공병원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예방보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필자와는 달리 본격적인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료 의료진들을 냉정하게 바라 볼 때, 지역에서 발생하는 중간 정도의 중증도 환자들을 치료함에 있어 별다른 부족함이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의료진이나 시설 측면에서 사실 더 중한 환자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대개 서울의 더 큰 병원으로 가버리니 치료할 기회가 자체가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또한 지역 내 다른 병원들의 상황도 찬찬히 잘 들어보면 그다지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는 병원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 가족들도 지역 병원들에서 가벼운 질병부터 매우 중한 질병까지 전부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글에 좀 두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적자’를 견딜 수 있는 공공병원에 근무를 하면서, 바로 적정 의료의 현장에 서서, 지역 주민들에게 저의 속마음 얘기를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반론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미리 연락 주시고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건강관리센터로 찾아오시면 따뜻한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안산산재병원 건강관리센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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