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보다 비평하는 사회 만들자
비판보다 비평하는 사회 만들자
  • 주장환
  • 승인 2012.06.25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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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이란 뚝 분질러 이야기하자면 자가당착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를 비판할 만큼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비평과 달리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 지식이 함양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 비판가들은 입에 가시를 달고 있지만 비평가들은 잘만하면 가슴에 명예와 권위의 훈장을 달기도 한다.

그러나 비판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입에 든 가시로 남을 찌르며 스스로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이들은 입을 다물고 있으면 가시가 혓바닥이나 입천장을 자꾸 찔러대기 때문에 끊임없이 입을 열고 불확실하고 검증되지 않은 추정 혹은 의도된 거짓말을 지껄여댄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가만 살펴보면 비평가는 보이지 않고 비판가들만 날을 세우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 중 한 가지가 포괄수가제와 관련해 협박 및 상호비방 공세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포털사이트뿐 아니라 관련기관에도 비평과 비판을 가리지 않는 무책임한 글과 신상털기가 도배를 하고 있다. 이는 건강한 목소리를 내는 연관단체와 사람들에게 협박을 가하고 있는 최근의 분위기와 맞물려 우리사회의 병적증세를 보여준다 할 것이다.

이쯤되면 우리나라에서 공공부분에 대한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공적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침몰하는 배와 같다. 스스로 만든 윤리나 규범을 버리고 상대를 짓이기려는 행위가 저만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승무원이나 승객과도 같은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특히 ‘패거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패거리는 원래 약한 자들이 모여 강한 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무리를 이룬 생존방식이다. 원시인류가 맘모스 같은 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가던 일을 상기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문명화된 조직에서 패거리 문화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는다. ‘내편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편협된 사고가 그렇다. 이런 사고는 필수적으로 정쟁을 낳으며 사회를 이분화시킨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패거리를 잘 짓는 민족도 드물다고 한다. 조폭 패거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거지들도 ‘비럭질 설립 위원장’ 자리를 놓고 패를 지어 싸우다 갈라진다고 한다.

어느 사회이든 제대로 된 비평가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우나 잡설에 능통한 비판가들은 넘쳐서 봇물 터진다. 이들은 세상을 자기 눈으로 재단하여 평가한다.

이들은 기타를 들고 베토벤 교향악을 연주하려 하거나 순금을 도금하고 백합에 흰 색칠을 한다. 장미에 향수를 뿌리고, 명화에 색을 하나 더 입히고 제가 한 일을 자랑스러워한다.

이들은 정신적 메조키스트(자기학대)에 다름 아니다. 지금 같은 고도 지식기반사회에서 거덜난 전체주의식 떼거리를 추종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비판 권력이 우리 사회의 여론을 이끌어가고 주무르고 있다. 이들은 소통을 거부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주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생략한다. 이들은 자신의 이권을 위해 패거리 속에서 파생되는 부스러기들을 독점하며 자라난다.

비평이나 비난이나 모두 '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행위이지만, 비판은 대상을 판단하는 것이되, 특히 부정적인 면을 지적한다. 이른바 ‘놀부심보’다.

그러나 비평은 대상을 평가하되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을 가르기보다는, 대상을 분석하여 가치를 논한다. 우리 사회도 이제 비판보다는 비평을 하는 성숙함이 자리잡아 가야 한다. <본지 논설위원/소설가/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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